입력 : 2020.04.28 18:40
빌리 차일디쉬 ‘늑대, 일몰 그리고 자신’展
6월 27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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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필치가 두드러지는 빌리 차일디쉬(Billy Childish·61)의 회화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나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그것을 연상한다. 때론 길게 혹은 스타카토처럼 짧은 호흡의 붓질이 자유롭게 얽힌 화면이 흡사 최면에 거는 듯 보는 이를 홀린다. 몰입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은 어느 작가에나 필수적인 창조의 과정이겠으나 차일디쉬에게 있어 이 상태는 작품 그 자체다. 역동적인 에너지와 감정을 그대로 담아 앉은자리에서 수정 없이 한 번에 완성해내는 싱글세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고흐, 뭉크와 같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특정 사조로 구분되지 않으며 독자적인 표현방식이 두드러지는 작가들과 비견되곤 한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 노을, 숲속의 늑대, 화병을 그린 정물 등 진부할 수 있는 소재도 차일디쉬의 화면에서는 색달라진다. 작가는 스스로를 ‘급진적 전통주의자(Radical Traditionalist)’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해 미술사에서 친숙한 주제를 주로 다룸으로써 원형적이고 순간의 에너지로 진동하는, 매우 개인적인 삽화와 같은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개인전 ‘늑대, 일몰 그리고 자신(Wolves, Sunsets and the Self)’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을 통해 차일디쉬는 목가적인 해질녘의 풍경부터 예사롭지 않은 구름이 낀 하늘을 담은 풍경화를 선보인다. 화병에 꽂힌 꽃을 그린 정물화와 사냥감을 쫓는 늑대를 담은 회화도 한 점 포함된다. 늑대는 작가의 딸이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늑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작품들은 화면 안에 외곽선을 포함하고 있어 액자에 담긴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작업 초창기부터 해온 버릇으로, 처음에는 액자가 없어도 된다는 실용적인 이유였지만, 지금은 회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차일디쉬는 “캔버스 규격에 맞춰 회화의 사이즈가 규정되는 게 싫다. 캔버스 틀과 상관없이 그리고 싶어서 프레임을 자율적으로 입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존재의 상태나 감정을 풍경이라는 형식을 통해 읽을 수 있게 하는 기표로도 생각될 수 있다. 작가는 개념이 결코 인본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나는 어린아이가 그리는 것과 같이 그림을 그린다. 외부의 어떤 것이 나의 관심을 끈다. 그 어떤 것을 회화로 남기는 행위는 내가 단지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만능의 창조자 혹은 피조물의 위치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차일디쉬는 화가이면서 음반을 낸 음악가, 수십 권의 소설과 시집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 자신감 넘치는 만능 예술인인 차일디쉬는 예술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물려받은 재능이며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을 붙들고 아름다움의 강렬한 유혹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차일디쉬의 몽환적인 회화는 꿈을 해석하는 한 방식으로도 풀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시는 6월 27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