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로 엮은 보석 같은 회화… ‘라이자 루’ 국내 첫 개인전

입력 : 2019.10.08 20:19

‘강과 뗏목’展, 노동의 가치 담은 비즈 작업 선봬
11월 9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송원아트센터 동시 전시

 
강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배 한 척도, 건널 다리도 찾지 못한 남자는 스스로 뗏목을 만들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때까지 거듭해 모형을 실험하던 남자는 드디어 직접 만든 뗏목을 타고 맞은 편 강둑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창작물인 뗏목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 Psalm 51 >(2019) 앞에 선 라이자 루가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윤다함 기자
< Psalm 51 >(2019) 앞에 선 라이자 루가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윤다함 기자
< Kitchen > 15.6㎡ Glass Beads, Wood, Wire, Plaster and Artist's Used Appliances 1991~1996 /lizalou.com
< Kitchen > 15.6㎡ Glass Beads, Wood, Wire, Plaster and Artist's Used Appliances 1991~1996 /lizalou.com
 
앞선 민담에서처럼 라이자 루(Liza Lou·50)는 공력과 시간의 가치를 놓아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30년 이상 비즈를 재료로 삼아온 그는 비즈 자체의 물질적인 잠재력을 넘어 개념적 대상으로서 탐구해왔다. 특히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비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비즈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즈만큼이나 그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의 섬세한 집념이다. 이는 대표작 중 하나인 <Kitchen>(1991~1996)에서 두드러지는데, 무려 5년에 걸쳐 홀로 핀셋으로 일일이 구슬과 비즈를 붙여 실물 크기의 부엌을 지었다. 실제 이 작품으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렇듯 지난 수십 년간 재료를 관찰하고 천착해온 그는 자유란 오히려 한계 안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루가 자신의 ‘뗏목’을 들고 한국 관람객과 처음 마주한다. 개인전 <강과 뗏목(The River and the Raft)>이 리만머핀 서울과 송원아트센터에서 11월 9일까지 동시 개최된다. 출품작을 단서로 삼아 그의 뗏목을 알아챌 수 있다. 루는 두 공간에 걸쳐 ‘비즈로 엮은 회화’를 선보인다. 혹자는 그의 작업을 두고 회화라고도, 조각이라고도 부른다. 지난달 25일 열린 간담회에서 데이비드 머핀 리만머핀 대표는 “나는 회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루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매체의 위계적 본성이 설정하는 범위를 재조정한다.
 
그의 작업은 과정, 노동, 아름다움, 자신의 예술적 여정에 다른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생겨나는 우연의 결과물을 우선시한다. 2005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의 콰줄루나탈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줄루족 장인들과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이들 조력자는 손에 기름이 묻어 비즈를 물들이거나 조금씩 다른 직조 방식을 통해 각자의 개성과 흔적을 작품에 그대로 남긴다. 이들과 협업해 완성한 <The Waves>(2016)는 마치 하얀 천처럼 보이는 구슬로 만든 1000개의 시트로 구성된 작품이다. 
 
< Sunday Morning > 180.3x320cm Oil Paint on Woven Glass Beads and Thread on Canvas 2019 /윤다함 기자
< Sunday Morning > 180.3x320cm Oil Paint on Woven Glass Beads and Thread on Canvas 2019 /윤다함 기자
 
최근 그는 작업 과정과 매체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밀도 높고 다층적인 배열로 구슬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겹쳐 놓고 깨뜨리고 꿰매는 등 특유의 비(非)정통적 제작 방식이 드러난 신작도 볼 수 있다. <Psalm 51>는 평면적인 동시에 3차원적인 공간에 관한 실험으로서, 구슬을 섬세한 레이스 모양의 패턴으로 활용하지만 각 천에는 구멍이 나있고 그 안으로는 컬러풀한 유화가 보인다. 출품작 중 하이라이트인 <Sunday Morning>은 낮에 관람하길 추천한다. 창가로 스며든 햇살과 어우러져 내뿜는 영롱한 빛깔을 감상할 수 있다. 안료와 섞지 않은 날 것의 색채를 색조 변화도에 따라 그룹화해 보여주는 작품으로, 구슬을 직조해 완성한 각 표면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쏟았을 노동과 기민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루는 Anonymous Was A Woman Award(2013)을 수상하고 2002년에는 맥아더재단 펠로우십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드영미술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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