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짜리 수표, 신창원, 라면봉지… 이 모든 게 작품

입력 : 2019.09.24 15:52

이동기, 일상·대중적 이미지를 캔버스에 도입
한국 팝아트 태동기 엿볼 수 있는 작가 초창기 작업 내걸려
개인전 ‘1993~2014 : Back to the Future’ 11월 2일까지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이 작품 속에 박제됐다. 앤디 워홀의 ‘수배자(Most Wanted Men)’ 시리즈를 오마주한 이동기의 <수배자>(1998)다. “범죄자 머그샷을 실크 스크린으로 표현한 앤디 워홀의 ‘수배자’는 폭력, 죽음, 범죄 등과 관련해 시스템의 외부를 다룬 것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1998년은 TV만 틀면 신창원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던 때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벽에 붙어 있는 흑백 수배 전단지를 한 장 떼어 와서는 작업했다.”
 
이동기는 유명인, 만화, 매스미디어 등 대중문화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해왔다. /윤다함 기자
이동기는 유명인, 만화, 매스미디어 등 대중문화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해왔다. /윤다함 기자
<수표(Check)> 70x157cm Acrylic on Canvas 2002 /피비갤러리
<수표(Check)> 70x157cm Acrylic on Canvas 2002 /피비갤러리
 
이동기(52)는 작업 초창기부터 꾸준히 현실의 도큐먼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왔는데, 유명인 혹은 대형사고의 이미지, 잡지나 광고의 스틸컷, 10만원 수표 등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사건과 장면을 끌어들여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데 몰두해왔다. 이를테면 만화책의 한 컷을 확대해서 그린다거나 신문 지면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하는 식이었다. 일련의 작업들은 팝적인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작가 고유의 구체성, 나아가 한국의 특수성을 동시에 담으며 일상 속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로부터 작품을 이끌어내어 현실에 대한 강력한 환기를 불러 일으킨다.
 
작가는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 ‘아토마우스’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이 하나로만 그를 대변하기엔 좀 아쉽다. 대중문화를 차용하거나 비판의 소재로 다뤘던 작가들과 달리 이동기는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의 목격자이자 소비자로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규정해왔다. 1970년대 유년기를 보낸 그의 작업은 개인적 기억, 1970~1980년대 문화적 아이콘으로 대량 소비된 대중문화에 많은 부분 연결된다.
 
급속한 사회·경제 발전과 함께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파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확산이 진행된 당시의 한국 대중문화는 자생적 흐름을 만들어가기도 전에 외부로부터 유입된 미디어와 문화를 흡수하면서 혼성적인 형태를 띠었다. 이러한 상황적 배경을 토대로, 작가는 대중적 시각 이미지를 예술의 영역에 무비판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차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론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대중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효과, 예술과 시각문화의 여러 접점을 교차시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는 오늘날의 구체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대중문화와 예술의 관계, 상호작용에 대해 자각하게 한다는 평을 받는다.
 
/윤다함 기자
/윤다함 기자
 
1990년대 초반, 예술형식에 대한 실험과 매체 환경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났던 시기, 한국 팝아트의 탄생을 이끈 이동기의 초기 작업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 <1993~2014 : Back to the Future>가 마련됐다. 올 초 열린 <2015~2018>에 이은 후속전으로, 작업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태도와 방식을 살펴본다. 이와 함께 한국 현대미술에서 팝아트가 탄생한 배경과 팝아트 1세대 작가인 이동기의 역할을 되짚어볼 수 있다.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피비갤러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