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09 12:56
다가오는 10월(2019. 10. 17 ~ 2020. 02. 09)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막하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임영균 사진작가의 기록과 술회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 행보와 생애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1986년 10월 14일 저녁, 실험공연으로 유명한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라마마 극장에서 백남준이 연출한 <바이 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이 무대에 올랐다. 1984년 세계 최초의 우주오페라 <굿모닝 오웰 쇼>에 이어 서울아시안게임(1986)의 성공을 기원하는 ‘우주 오페라’ 공연이었다. 작품 타이틀은 영국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루디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동양과 서양은 역사와 문화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절대 화합할 수 없다던 주장에 반박하는 데서 기인했다. 백남준은 실시간 다국적 위성방송 연출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예술이 서로 얼마든지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 것이다.
그날의 공연은 딕 커버의 사회로 미국의 다인종으로 구성된 현대무용단 엘빈 앨리 레퍼터리의 무대로 시작해 낙서화가로 유명한 키스 해링, 작곡가 필립 글레스, 가야금 명인 황병기, 박상원, 선 무용가 이선옥 등 동서양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것은 피날레를 장식한 한국 전통 굿 공연이었다.
백남준은 <굿 모닝 오웰 쇼>부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험 부담이 큰 생방송을 고집했다. 물론, 우연을 중시하는 자신의 예술철학에 따라 방송 사고를 어느 정도 예측해 미리 대비하려고 했다. 이날 무대도 생방송으로 송출됐는데, 방송이 시작되고 22분이 지나 동경 스튜디오에서 방송이 시작됐고 일본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가 일본예술가를 소개할 순서였다.
그런데 그만 일본 방송국 기술자가 사카모토에게 연결된 스피커를 켜놓는 것을 깜박 잊어버려 방송 사고가 발생했다. 백남준은 뉴욕 스튜디오에서 사카모토를 불렀지만 이를 들을 수 없었고 그 상태로 40초 넘게 흘러간 것. 결국 다음 순서인 뉴욕 록 가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 기타리스트인 루 리드에게 곧바로 마이크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찌 됐든 뉴욕에서는 방송 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을 진행해갔다. 무대의 왼편에는 13개의 대형모니터로 제작한 TV 로봇 모니터가 설치돼 당시 실시간 진행되는 공연을 방영했다. 그날 관람석에는 한국 공동제작사 KBS 최동호 특파원과 유태완 뉴욕한국문화원장, 조각가 존 배씨 부부 등 국내외 예술계 인사가 앉아있었다.
이날의 장관은 굿판이었다. 무대에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의 제자가 한국에서 갖고 온 산신도를 무대 배경으로 설치하고 이를 배경으로 무희가 꽹과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살풀이에 맞춰 굿을 벌였다. 그러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요란한 꽹과리, 피리, 북소리와 함께 무희들이 신명 나게 춤을 추니, 이러한 것에 익숙해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한국관객에 반해, 서양관객은 흡사 이성을 잃은 듯 무장 해제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의 원초적인 무의식을 자극하는 굿 장단에 뉴요커들은 하나둘씩 자신을 방어하고 있던 이성을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의 이성적 사고에 젖어있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집단 환각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몸을 들썩이며 무대 주변으로 뛰쳐나와 접신이라도 한 듯 행동했다. 자신들도 알 수 없는 막춤으로 눈물까지 흘려가며 카타르시스를 배출해댔다. 이날의 공연은 미국 교육방송 PBS 채널13의 인공위성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에 그대로 실시간 방송됐다.
◆임영균은 1982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그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며 20년간 예술가로서의 동반을 이어갔다. 백남준은 임영균의 작업에 대해 “예술사진이란,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라고 평한 바 있다. 전국학생사진전최고상(1973),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 메리 포레스터 선정 전 미주 10대 사진가상(1985) 등을 수상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초대전(2007)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뉴욕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