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지금 여기②] ‘오페라 섹스트로닉’ 초대장

입력 : 2019.07.15 09:00
다가오는 10월(2019. 10. 17 ~ 2020. 02. 09)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막하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임영균 사진작가의 기록과 술회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 행보와 생애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세계 최초로 음악에 性을 도입
 
1967년 2월 9일, 백남준은 맨해튼 미드타운의 시네마테크극장에서 <오페라 섹스트로닉>을 공연한다는 초대장을 주변 예술가 동료들에게 보냈다. 1964년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는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Bra>를 공연함으로써 이미 뉴욕 예술계를 발칵 뒤집어놨는데, 이번에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섹스와 첨단기술을 가미한 예술을 선보인다는 의미의 ‘오페라 섹스트로닉’이라고 명명한 것이었다.
 
이 공연 역시 그의 뮤즈이자 동료인 샬롯 무어먼과의 공동 제작이었다. 무어먼은 무대의 막이 오르자, 백남준이 편곡한 <생상스를 위한 변주곡>을 연주하며 상의를 벗기 시작했고 일부 관중은 음악 감상보다는 점차 드러나는 무어먼의 상반신에 괴성을 질러댔다. 결국 상반신이 전부 노출되자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뉴욕경찰이 들이닥쳤다. 급기야 무어먼은 연주 도중 풍기문란죄로 체포돼 경찰서에 연행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관객들이 벌금을 대납해 즉심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뉴욕 공연법은 새롭게 제정됐다.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루즈벨트가 예술 공연이라면 누드가 허용된다는 새로운 법에 서명했다.
 
─달 착륙 장면을 ‘TV Bra’에 방영하다
 
같은 해 7월 20일, 맨해튼의 카페 ‘오 고고’에서 열렸던 백남준 개인전에서 다시 한번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일어났다.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역사적인 달 착륙 장면이 그곳에서 공연하던 무어먼의 ‘TV Bra’를 통해 방영한 것이다. 작은 모니터에서는 역사적인 달 착륙의 순간을 보여주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때 백남준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Bra’는 전자 분야의 기술을 인간화한 충격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은밀한 물건 중 하나인 브라를 TV로 사용해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다. 동시에 관객의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새롭고 상징적인 기술을 인간적으로 사용하길 상상하는 것을 뜻한다.
 
이어서 1971년 발표한 ‘TV Cello’에서는 샬롯 무어먼이 연주하는 첼로음에 따라 세 대의 크고 작은 컬러 TV 화면의 영상이 변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객은 자신이 공중에 떠다니거나 바다를 부유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감각한다. 전자적으로 구현해낸 다채로운 색이 메아리를 이루며 그 안으로 관객이 떠다니도록 만들었다.
 
1982년 샬롯 무어먼이 휘트니미술관에서 <TV Cello>를 공연하고 있다. ⓒ임영균
1982년 샬롯 무어먼이 휘트니미술관에서 를 공연하고 있다. ⓒ임영균
 
─살아있는 비디오 조각 ‘TV Cello’
 
1971년 11월, 백남준은 무어먼과 함께 뉴욕 보니노갤러리에서 <TV Cello와 비디오테이프를 위한 코첼토>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연주되지 않을 때에는 3개의 독립된 모니터에서 세로로 첼로 형태로 연결돼 있고, 화면에서는 무어먼이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똑같이 비쳐 조각적 오브제로 분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어먼이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영상은 완전히 뒤바뀐다. 연주자의 모습이 첼로 모니터에 실시간 방영되며 연주의 음질과 음량 고저에 따라 모니터의 화면에 증폭되는 인터렉티브 조각, 즉 상호 작용하는 조각으로 탈바꿈되는 것이었다.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작품은 TV모니터에서 상영되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TV 세트를 모두 포함한다. 물론 ‘비디오 조각’이란 말 자체도 백남준 이전에는 사용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살아있는 비디오 조각’은? 이렇듯 백남준은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을 거침없이 행동에 옮기는 천재였다.
 
문학과 미술에서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섹스가 음악에서만 유독 금기시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 클래식 음악이 섹스를 터부시하기때문에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백남준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찍이 누드로서 자신이 작곡한 생상스 변주곡을 연주할 파트너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무어먼이었다. 달 밝은 밤에 누드로 베토벤의 월광을 연주할 수 있는 미모의 여성을 말이다.
 
─백남준의 뮤즈, 샬롯 무어먼
 
무어먼은 1933년 미국 남부 아칸소주 리틀록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0대부터 뛰어난 외모와 재능으로 ‘미스 아칸소’로 활동했으며 장학금으로 뉴욕 음악명문 줄리아드에서 수학하고 아메리칸심포니의 첼로 수석연주자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뉴욕으로 이주한 뒤, 1960년 초에 존 레논의 부인이자 플럭서스 멤버인 아방가르드 예술가 오노 요코와 같은 아파트에 산 것이 인연이 돼 아방가르드에 심취하게 됐다. 그때부터 존 케이지 등과 함께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조직하고 예술감독으로 역량을 발휘해 1980년 초까지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영향력은 뉴욕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으로까지 퍼져 1991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게 될 정도로 20세기의 주요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또한 백남준의 평생의 예술 동지이자 뮤즈이기도 했다. 만약 백남준이 1964년 뉴욕에서 무어먼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의 백남준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 확신한다.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다름슈타트 하계음악학교에서 존 케이지를 만나 예술가로 새롭게 탄생했다면, 1964년 뉴욕에서 무어먼을 만난 것은 공연 예술가로서 날개를 단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임영균은 1982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그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며 20년간 예술가로서의 동반을 이어갔다. 백남준은 임영균의 작업에 대해 “예술사진이란,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라고 평한 바 있다. 전국학생사진전최고상(1973),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 메리 포레스터 선정 전 미주 10대 사진가상(1985) 등을 수상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초대전(2007)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뉴욕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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