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위협하고 혼란을 빚는 그대가 바로 ‘빠른년생’

입력 : 2019.07.10 18:24

[이해강]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중간자적 존재… 십이지 동물로 묘사
개인전 ‘Mashed Potato’, 27일까지 갤러리2

 
“빠른년생이라는 거, 참으로 재밌어요. 1·2월에 태어나면 동년보다 한해 조기 입학해 한 살 많은 형, 누나와 친구가 되잖아요.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이 빠른년생이 막상 사회에서는 서열문화와 위계질서를 흐린다며 욕먹곤 한다는 거예요.”
 
빠른년생, 2002년생까지 적용되고 이후 폐지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신박한 개념이다. 나이로 줄 세우는 한국 사회에서 ‘족보 브레이커’라고 불리며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때론 두 요소를 통합시키기도 한다. 이해강(30)은 이렇듯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자인 빠른년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애매모호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빠른년생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흐리터분한 경계 어딘가의 틈에 있는 것 같거든요.”
 
이해강 작가가 빠른년생과 십이지 동물을 주제로 한 신작 앞에 섰다. /임영근 기자
이해강 작가가 빠른년생과 십이지 동물을 주제로 한 신작 앞에 섰다. /임영근 기자
 
나이를 논하다보니 자연스레 십이지 동물로 소재가 번졌다. 이들 동물은 남녀노소 불문 인지도가 높고 쉽게 공감하는 월트디즈니 캐릭터의 모습을 빌려 그려졌다. 쥐는 ‘미키마우스’, 소는 ‘클라라벨 카우’, 호랑이는 ‘티거’인 식이다. 소재는 친근하지만 형상은 익숙하지 않다. 알 수 없는 새로운 생김새는 경계자인 빠른년생을 묘사하기 위해 두 동물을 결합한 것으로, 12간지에 따라 규칙적으로 연속되고 반복되는 동물과 색을 겹쳐 그려냈다. 이를테면 <BHWS02>는 2002년 말띠(흑색)와 2001년 뱀띠(백색)가 공존한다. 한마디로 친구끼리 사이좋게 짝지어준 셈이다.
 
이해강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하는 모핑(Morphing) 기법을 활용해 두 동물의 특징을 섞어 이미지를 만든다. 캐릭터를 직접 드로잉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뒤, 십이지 순서에 따라 한 동물에서 다음 동물로 변하는 순간의 프레임을 추출한다.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이미지는 캔버스로 옮겨와 유화물감과 스프레이로 빚은 덩어리가 된다. 모핑 기법을 통해 추출된 이미지는 도자기로도 제작되는데, 캔버스의 덩어리가 평면이라면 세라믹 작업을 통해 이를 3차원 공간으로 끌고 나와 진짜 덩어리를 실현한 것이다. 이번 전시타이틀이 ‘메쉬드 포테이토’인 이유다. 두 동물 고유의 형상과 색을 으깨 잘 섞어 덩어리를 빚는 과정이 메쉬드 포테이토 만드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란다.
 
/임영근 기자
/임영근 기자
 
안주하지 않고 경계를 오가는 빠른년생은 그라피티, 애니메이션, 회화, 세라믹 등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해강은 그라피티 라이터(Graffiti Writer)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이며 2014년부터는 캔버스에까지 작업을 확장했다. 단일 영역에 안착하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활동해온 이해강이 바로 질서를 위협하는 경계자인 것. 개인전 <매쉬드 포테이토>가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갤러리2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2년부터 1970년까지의 빠른년생을 묘사한 35점의 작품과 이를 입체화한 세라믹 작업 15점을 함께 내보인다. “저는 똑떨어지는 것보다는 쉬 규정짓기 어려운 모호함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길 즐기죠. 그런데 사실… 빠른년생은 아니고 10월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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