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Art] 초대형 연습장에 낙서 그림… ‘어른이’ 감성 저격한다

입력 : 2019.05.10 17:19

마이클 스코긴스 ‘We Are Family’展, 6월 7일까지 지갤러리

미국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가 국내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었다. 어린아이가 쓴 편지나 낙서를 연상하는 페인팅을 선보인다.
미국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가 국내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었다. 어린아이가 쓴 편지나 낙서를 연상하는 페인팅을 선보인다.
< I Will Always be Your Hero > 170x129cm Artist Crayon,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아트조선 임영근 기자
< I Will Always be Your Hero > 170x129cm Artist Crayon,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아트조선 임영근 기자
 
“어렸을 적에 다들 반성문 한 번씩 써보잖아요.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따위를 열 번, 스무 번씩 쓰는 것 말예요. 그럴 때면 저는 줄을 따라 ‘다’를 열 번, ‘신’을 열 번, ‘그’를 열 번 미리 써놓는 식이었어요.”
 
깜놀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46)는 유년기 경험과기억을 크레용, 색연필로 그린다. 학교에서 반성문 썼던 그때를 떠올리며 어린아이의 필체로 특정 문장을 반복해서 몇 줄이고 써놓은 텍스트 작품, 혹은 동심의 시각을 살려 집 한 채 옆에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을 그린 그림, 낙서 같은 회화를 작업해왔다.
 
스코긴스의 바탕지는 파란 줄이 쳐진 종이. 유선연습장에서 지금 막 찢어낸 듯 측면이 너덜너덜하다. 작가는 이를 일부러 마구 구기거나 귀퉁이를 접어 평면적인 드로잉이나 페인팅을 3차원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전통적인 캔버스에서 벗어나 작가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기법이다. 종이 높이는 170cm에 달한다. “가상과 현실의 카오스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제 작품을 통해 유년의 향수를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과장스럽게 확대한 종이를 제작했습니다.”
 
< I (heart) My Friends > 170x129cm Artist Crayon,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 Thanks Mom > Artist Crayon,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g.gallery
< I (heart) My Friends > 170x129cm Artist Crayon,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 Thanks Mom > Artist Crayon,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2019 /g.gallery
 
작품마다 정자(正字)로 써놓은 이름은 작가의 서명이기도, 그림의 일부이기도 하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꼭 저렇게 이름을 쓰곤 했거든요. 실제 제 어릴 적 글씨체와 똑같아요. 어린 시절의 페르소나 같은 거랄까요. 그때 그 시절의 경험과 환상을 오늘날 화면으로 환기해주는 역할을 하죠.”
 
몇 년 전만 해도 스코긴스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두고 냉소적인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년 전 ‘아빠’가 되면서부터 가족을 주제로 밝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작업이 부쩍 늘었다. ‘딸바보’인 작가는 이제 막 돌을 넘긴 아기 얘기에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실제로 작가의 즐겁고 유쾌한 그림의 영감과 원천은 가족이었다. 
 
/아트조선 임영근 기자
/아트조선 임영근 기자
 
스코긴스의 개인전 ‘We Are Family’가 6월 7일까지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린다. 키덜트족을 겨냥해 장난스런 낙서를 연상하는 회화와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작품의 디자인적 요소를 살려 제작한 가방, 접시, 머그컵 등 아트 상품도 함께 판매한다. 가족이라고 하면 사랑이나 화목, 따뜻함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집안마다 사정은 있는 법. 스코긴스는 인터뷰 끝자락에 묘한 여운을 남겼다. “겉에서 보기엔 마냥 행복해 보이더라도 그들만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죠. 진짜 속내는 모르는 법이잖아요.” 그림 속 활짝 웃고 있는 스마일의 시커먼 눈에 이상적인 가족상의 이면이 내비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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