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3.06 14:47
[인터뷰] 김재용 서울과기대 도예과 교수
크리스털과 화려한 패턴의 세라믹 도넛에 세계 미술시장이 주목…
美 보이지미술관, 中 파워롱미술관서 개인전 가져

시럽을 끼얹은 듯 윤기가 좌르르. 먹음직스러운 것이 한 입 앙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아서라. 밀가루가 아닌 흙으로 구운 세라믹 도넛이나니. 일명 ‘도넛 작가’로 알려진 김재용(Jae Yong Kim·46)은 유머와 위트, 추억, 이상(理想)을 한데 반죽해 세라믹 도넛으로 구워낸다. 모양과 색깔, 장식으로 다양한 변주를 가하는데, 공통된 특징은 실제 도넛처럼 정교하면서도 호화로운 색감을 띤다는 점. 그러나 그저 예쁘고 화려한 눈요깃감만은 아니다.
그가 도넛을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지금이야 아트페어에 작품을 내놨다 하면 팔리기 바쁜 인기 작가지만, 그에게도 힘들던 때가 있었다. 김재용은 작가로써의 삶을 부여잡기 위해 애썼지만 재료비와 작업실 월세 충당하기도 어려워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그때를 회상했다. “십 년 전쯤이었을까.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어요. 예술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도넛 가게를 창업하려고까지 했으니까요. 작업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으니 더는 무서운 것도 없더군요. 도넛 가게를 차릴 바엔 차라리 도넛을 작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고(高)탄수화물, 즉 ‘입엔 달지라도 몸엔 안 좋은 것’의 대명사인 도넛은 당시 작가에게 쾌락과 욕망, 안락함을 상징했다. 돈을 좇아 안주한다면 과연 옳은 선택일지, 건강한 길일지 회의가 들었다. “꼭 먹기만 해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먹지 말고 트로피처럼 벽에다 걸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누가 그런 짓을 하겠어요?” 작가는 뭐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형형색색의 도넛 수십 개를 한 번에 걸어놓으니 작품이 됐다. 실제로 도넛 전시는 흥행했고 김재용에게 다시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무엇보다도 성별과 연령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작가가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이유다. 뉴욕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오던 그가 돌연 귀국한 것은 5년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과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에 터를 잡았다. “미국에만 있으면 편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도전하고 부딪혀야 더 힘이 나고 즐거운 사람이거든요. 한국인이면서 정작 작품은 해외만큼 한국에서 자주 보일 기회가 없었는데, 이젠 국내 관람객과 자주 소통하며 제 도넛으로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작가는 지난 1월 뉴욕 아이컨 갤러리(Aicon Gallery)와 함께 인디아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아이다호에 위치한 보이지미술관(Boise Art Museum)에서 대형 개인전을 개최했다. 다가오는 4월 12일에는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I Love Donuts’을 앞두고 있다. 세라믹 도넛 800점을 한 벽에 설치해 장관을 연출한다. 크기 3.5m가 넘는 크롬 도넛 조각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 파워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국내 작가는 김재용이 최초인 만큼 작가에게나 한국미술에나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듯이 김재용의 도넛 앞에서 관람객은 도넛 가게에 들어와 먹고 싶은 도넛을 고르는 것 같은 기대에 찬 경험을 한다. 크리스털로 뒤덮여 강렬한 색채 대비와 독특한 패턴의 세라믹 도넛은 ‘당 충전’해주듯 보는 이에게 에너지와 위안을 준다. “도넛을 먹을 때 맛보는 행복감을 제 도넛에서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