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1.22 22:12
추상화가 이태량 “중요한 건 그림 밖에”… 난센스적 접근
‘명제형식’展, 2월 22일까지 갤러리초이

규칙과 틀을 논해야 할 것 같은 ‘명제형식(命題形式)’이란 제목과 달리 이태량(54)의 그림은 그야말로 카오스다. 뜻 모를 기호와 수식이 널려 있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거친 붓질에 당최 이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혼란스럽다. 혼돈과 무질서 안에서 대체 어떤 명제와 형식을 찾아야 하는 걸까. “뭘 찾아야 할지 모르는 게 맞아요. 제 그림에선 찾을 게 없거든요.”
그린 사람이 정작 그림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그 자체로 말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음이 바로 이태량의 작품이다. 그의 그림은 덩그러니 벽에 걸려있을 때가 아닌, 보는 이가 감상하고 의문할 때야 비로소 유의미해지며 작동된다. 작업의 점정(點睛)은 다름 아닌 관람객의 몫인 셈.

추상적인 화면 위로 숫자, 알파벳, 기호, 인체 드로잉이 한데 뒤섞여 자유로움과 혼란스러움을 빚어내고 관람객은 이 무질서를 만끽하며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 고민에 빠지면 된다. 이태량의 그림에는 언뜻 많은 것이 내재된 듯 보이나 실제 키는 전적으로 관람객이 쥐고 있다. “보는 이가 제 그림을 통해 스스로 문답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생각의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촉매, 즉 그림의 역할은 거기까지죠.”
작가는 작업 초창기부터 장식적이거나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단다. 그보다는 종교, 철학 등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에 매료됐고 인간이 만든 이론 너머의 이야기를 작품으로써 설명하고 싶었다고. “인간의 지식과 문명의 테두리 밖의 세계가 궁금했어요. 초현실적인 영역은 예술을 통해서만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 논리학, 수학, 우주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뒤, 기호와 수식 등을 통해 조형적 요소로 작품에 반영한다. 이렇듯 사전 준비는 철저하지만 작업 과정은 즉흥적이다.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것이 그날의 재료다. 그래서 작품 소재는 다채롭다. 오일, 아크릴, 목탄부터 잡지 따위를 콜라주하기도 한다.

이태량이 수년간 몰두해온 연작 ‘명제형식’의 최신작 수 점이 갤러리초이에 내걸렸다. 작품의 본바탕이나 주제는 기존 작업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색감이 보다 밝아지고 화사해졌다. 직관적이지 않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추상화지만,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고 쉽게 동화될 수 있도록 화려한 네온 컬러와 원색을 과감하게 쓴 점이 눈에 띈다.
이번 출품작을 죽 둘러보다 보면 작품마다 반복되는 특정 숫자와 기호를 볼 수 있다. 이리도 자주 등장하는데 분명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게 일반적일 테지만 이태량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아무 의미 없대도요.” 중요한 것은 모두 그림 밖에 있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