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06 22:27
안젤 오테로, 실험적 기법의 콜라주 작업… 국내 첫선
개인전 ‘Piel de Luna’ 내달 22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아크릴 유리 위에 오일페인트를 바르고 또 바르기를 반복하며 층층이 쌓아 올린다. 켜켜이 축적된 페인트가 완전히 굳기 전 이를 밀어 긁어내면, 흡사 거죽 같기도 가죽 같기도 한 ‘오일스킨(Oil Skin)'이 유리판에서 벗겨진다. 말 그대로 오일페인트가 빚어낸 피부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작가 안젤 오테로(37)는 오일스킨으로 도드라진 질감을 살려 회화에 역동성과 생동성을 불어넣어 입체적인 콜라주 작업을 이어왔다. 독특하고도 혁신적인 기법으로 학생 때부터 주목받기 시작, 일찍이 리만머핀 소속으로 낙점됐다. 리만머핀은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선도하는 메이저 화랑 중 하나로 꼽힌다. 뉴욕, 홍콩에 이어 지난해 분점을 낸 리만머핀 서울에서 안젤 오테로의 국내 첫 개인전이 마련됐다. 2016년 개인전을 가진 홍콩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이 두 번째인 셈. 그전에는 뉴욕 브롱크스미술관(2017), 텍사스 휴스턴현대미술관(2016), 스페인 라스팔마스 데그란카나리아 아틀란티코 국립현대미술관(2015) 등 매해 미술관에서의 대형 개인전을 꾸준히 가져왔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너무도 즐거워 출국 일정을 뒤로 좀 미룰 생각이라는 그를 지난 1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앞두고 한껏 상기돼 있었다. 2m가 훌쩍 넘는 대형 스케일의 최신작과 종이 위에 콜라주한 소품, 벽에 거는 태피스트리(Tapestry, 벽걸이나 가리개로 쓰이는 실내장식품)를 연상케 하는 또 다른 대형 오일페인트 작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안젤 오테로의 작업 세계에 관해 물어봤다.

─ 한국은 첫 방문이다. 시차 적응은 했는지?
“첫날은 새벽 5시 일어났는데 그다음 날은 7시, 그리고 오늘은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완전 현지인이 다 됐다.”
─ 회화가 스케일이 크고 역동적이다. 작업 과정을 설명해 달라.
“커다란 유리판 위에 오일페인트를 두껍게 바르며 다양한 레퍼런스 이미지를 그리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유리판 위의 오일페인트가 말라갈 때쯤 이를 긁어내는데, 이게 오일스킨이다. 긁어낸 오일스킨을 조각조각 잘라내 처음 그렸던 본래 이미지를 유추할 수 있도록 나만의 힌트를 심어서 콜라주하고 있다.”
“커다란 유리판 위에 오일페인트를 두껍게 바르며 다양한 레퍼런스 이미지를 그리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유리판 위의 오일페인트가 말라갈 때쯤 이를 긁어내는데, 이게 오일스킨이다. 긁어낸 오일스킨을 조각조각 잘라내 처음 그렸던 본래 이미지를 유추할 수 있도록 나만의 힌트를 심어서 콜라주하고 있다.”
─ 회화의 질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오일스킨의 역할이 크다. 가까이서 보니 마치 피부나 가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오일페인트는 아크릴물감과 비교해 특징적이고 역사성을 지닌 재료이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 오랜 시간 쓰여 온 재료니까. 실제로 오일페인트로 그린 고전회화의 표면을 보면 내 눈에도 꼭 피부 같아 보인다. 윌렘 드 쿠닝은 ‘사람의 살은 유화가 발명된 이유(Flesh was the reason why oil painting was invented)’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오일페인트는 아크릴물감과 비교해 특징적이고 역사성을 지닌 재료이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 오랜 시간 쓰여 온 재료니까. 실제로 오일페인트로 그린 고전회화의 표면을 보면 내 눈에도 꼭 피부 같아 보인다. 윌렘 드 쿠닝은 ‘사람의 살은 유화가 발명된 이유(Flesh was the reason why oil painting was invented)’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 행잉 콜라주 작품도 재밌다. 오일스킨의 잔해와 파편이 얽히고설킨 모습이 묘한 것이 꼭 조각적으로도 느껴진다.
“4년 전 어느 날 내 작품이 모두 똑같아 보이더라. 변화를 꾀할 때라고 느꼈다. 네모난 정형화된 캔버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다른 걸 도전해볼만한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작업해놨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아 회화 콜라주에는 쓰지 못했던 작품들을 꺼냈다. 그리곤 그것들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바닥에서 모아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합해봤다. 그러다 좀 더 조각적인 요소가 풍기도록 작업하다 탄생한 것이 이 행잉 콜라주다. 내 작업은 늘 ‘열린결말’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어떻게 흘러갈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4년 전 어느 날 내 작품이 모두 똑같아 보이더라. 변화를 꾀할 때라고 느꼈다. 네모난 정형화된 캔버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다른 걸 도전해볼만한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작업해놨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아 회화 콜라주에는 쓰지 못했던 작품들을 꺼냈다. 그리곤 그것들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바닥에서 모아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합해봤다. 그러다 좀 더 조각적인 요소가 풍기도록 작업하다 탄생한 것이 이 행잉 콜라주다. 내 작업은 늘 ‘열린결말’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어떻게 흘러갈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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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법과 방식이 실험적이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할 때부터 나는 평범한 것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독특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림의 주제를 잡는 데에도 고민이 많았는데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개인적이면서도 내가 편하게 그릴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래서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봤다. 물론 내 인물화가 ‘사람을 이렇게 잘 그렸다’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을 바탕으로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그렸다. 그림 위에 또 그리고 덧칠하고 문득 긁어보기도 하고 그걸 버리지 않고 모아놓기도 하고… 이를 반복하며 2년가량이 더 걸려 지금의 작업과 같은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지금까지도 작업의 독창성이 내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 엄마와 할머니를 그렸다고 했는데,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감이 있다면?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집안 환경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해 예술이나 책으로 둘러싸여 지내기보단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독특한 분이셨고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내게 많은 영감이 돼 주셨다. 그 영향으로 예술적 감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지금껏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신 분이다. 비록 4년 전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난 어릴 적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집안 환경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해 예술이나 책으로 둘러싸여 지내기보단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독특한 분이셨고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내게 많은 영감이 돼 주셨다. 그 영향으로 예술적 감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지금껏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신 분이다. 비록 4년 전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난 어릴 적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 추상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맞다. 앞서 말한 윌렘 드 쿠닝은 내가 학생 때부터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다. 잭슨 폴록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 우연히 잭슨 폴록의 그림을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풍경화나 인물화, 정물화 같은 것만 그림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물감이 마구잡이로 흩뿌려진 그의 추상화를 두고 세계가 칭송하는 걸 보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물감을 던지곤 예술이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잭슨 폴록은 내게 예술로 향하는 문(Door)을 열어준 거다. 그의 추상화를 통해 그림이 감정적일 수 있으며, 그림 안에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맞다. 앞서 말한 윌렘 드 쿠닝은 내가 학생 때부터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다. 잭슨 폴록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 우연히 잭슨 폴록의 그림을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풍경화나 인물화, 정물화 같은 것만 그림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물감이 마구잡이로 흩뿌려진 그의 추상화를 두고 세계가 칭송하는 걸 보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물감을 던지곤 예술이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잭슨 폴록은 내게 예술로 향하는 문(Door)을 열어준 거다. 그의 추상화를 통해 그림이 감정적일 수 있으며, 그림 안에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지난해 이탈리아 Vannucci Artist 레지던시에 참가했다. 지금껏 주로 미국서 활동해오다 이탈리아에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런던에 거주하는 내 작품 컬렉터가 있다. 그가 이탈리아에 별장을 갖고 있는데, 마침 이러한 레지던시가 있다고 들었다며 내게 소개해줬다. 재밌을 것 같아서 두말하지 않고 참가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비록 한 달가량밖에 머물지 못해 아쉬웠지만.”
─ 이번 전시 관람객에게 기대하는 바는?“내 작품을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 기대보다는 그저 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감상해줬으면 한다.”
─ 끝으로 다음 작품은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내년 3월 리만머핀 뉴욕에서 전시를 가진다. 또 댈러스와 LA에서도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