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8.23 11:07
한지에 아크릴 채색 회화로 그린 혼란스러운 세상

개가 바닷가에서 상어를 먹다 말고 뱀을 바라본다. 불타는 해변에서 뒤엉켜 교미하는 뱀을 물끄러미 보는 개의 얼굴이 혼란스럽다. 기괴한 아수라장을 고발하는 오세경 작가의 신작 <아수라>의 장면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교미하는 두 마리의 뱀을 보고 지팡이로 암컷을 때려죽인 뒤 여자로 변한다. 그리고 7년 후 같은 장소에서 교미하고 있는 두 마리의 뱀을 보고 이번엔 수컷을 발로 밟아 죽이고 다시 남자가 된다. 여성과 남성의 삶을 모두 경험한 테이레시아스는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예언자가 된다.
이처럼 예로부터 뱀은 지혜와 영생의 상징이며, 두려움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지녀 떠받듦의 대상으로 일컬어지곤 했다.
하지만 오세경은 타오르는 불에 머리를 잃고도 맹목적으로 불을 향해 달려드는 뱀의 모습을 통해 경외심의 붕괴와 타락을 표현했다. 절대적인 가치와 이념이 무너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테다.
작가에게 불은 존재의 소멸이자 역설적으로 존재를 가장 치열하게 증명하는 수단을 뜻한다. 작가는 불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해석해 적절하게 작업에 녹여내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아수라>를 비롯해 한지에 아크릴 채색으로 작업한 그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개인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내달 18일까지 아트스페이스휴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