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삶'일지라도 인간은 自主하다

입력 : 2018.08.17 16:40   |   수정 : 2018.08.17 17:10

만년 화두 '인간'에 자유 쥐여 준 88세 황용엽 화백
<같은 선상에서> 9월 7일부터 조선일보미술관
미공개 신작 20점 등 30여 점 선보여

이번 초대전 <같은 선상에서>에 내보이는 신작은 이전 작품에서 보였던 선과 색을 단순화하고 한국적인 문양은 더욱 과감하게 나타낸 것이 특징. 다양한 구도와 분할된 화면에서 각기 다른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 145.5x112.1cm 2017 / 아트조선
이번 초대전 <같은 선상에서>에 내보이는 신작은 이전 작품에서 보였던 선과 색을 단순화하고 한국적인 문양은 더욱 과감하게 나타낸 것이 특징. 다양한 구도와 분할된 화면에서 각기 다른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 145.5x112.1cm 2017 / 아트조선

“그림이란 그저 말없이 묵묵히 내 모든 것을 캔버스 위에 쏟아부어 나만의 세계를 정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법이다. 작품을 두고 주절주절 말로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롯이 작품을 통해 작품으로만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평생을 그려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그림이라고 원로화가들이 입을 모으는 연유일 것이다.  
황용엽도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형과 색으로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구축하는 데 일생을 쏟았지만 화필을 잡은 지 꼭 70년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아흔을 바라보는 오늘날에도 그의 만년 화두인 ‘인간’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시도를 향한 열정은 그칠 줄 모른다. 
황 화백은 지난했던 시대 속 자신의 경험과 참혹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을 필생의 주제로 삼고 그에 몰두해왔다. 작품 속 인간은 곧 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자신의 일기이자 삶의 기록인 이유다. 무더위로 끓어오르는 8월의 어느 날, 노화백은 화실에서 꼿꼿이 서서 그날도 인간을 그리고 있었다. 이는 미수(米壽)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신작을 내놓는 그의 반복적인 일상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4층에 위치한 작업실로 매일 출근, 아침부터 오후까지 종일 그림을 그린다는 그가 전례 없는 더위 탓에 요즘에는 7시간밖에 못 그리겠다며 웃었다. “내 전용 화실에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데요.”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발발 당시 월남해 거처가 마땅치 않았던 그는 홍대 미대 재학 시절 그림을 비롯해 초기 작품을 대부분 유실해버렸다. 그래서 그에겐 화실의 의미가 남다르다. 수장고이기도 한 그곳에서 이제껏 힘든 줄 모르고 쉼 없이 새로운 연작들을 내놓았다. 
서울 남현동 작업실에서 만난 황용엽. 매일 화실로 출근해 7시간씩 작업한다는 그는 이날도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을 건조하고 있었다. / 아트조선
서울 남현동 작업실에서 만난 황용엽. 매일 화실로 출근해 7시간씩 작업한다는 그는 이날도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을 건조하고 있었다. / 아트조선

─ 이중섭미술상 30주년 기념, 초대 수상자 황용엽展
그의 신작과 더불어 지난 작품을 돌아보는 전시 <같은 선상에서>가 9월 7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 이중섭미술상 제정 30주년 기념전이자 초대 수상자인 황 화백의 개인 초대전이기도 하다. 꾸준히 진화하고 도전해온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로, 특히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신작 여러 점이 공개된다. 
예술은 무릇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품 활동 초기부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건립하며 국내 미술계를 장악했던 여러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일궈냈다. 홍대 미대 4학년 재학 시절, 국전에 출품했다 낙선한 작품을 두고 당시 교수였던 故이종우 선생이 학생 황 화백에게 "나도 네 그림은 뭘 그린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1989년 이중섭미술상이 처음 시행되고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황 화백을 1회 수상자로 지목했다. “시류에 타협하지 않고 은둔 자세로 자기 영역을 고수해온 집념을 높이 샀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그리워했던 이중섭의 예술혼과 무수한 실험과 시도가 난무했던 화단에서 인간의 삶의 환경과 상황을 끈질기게 그려온 황용엽의 예술세계는 서로 연결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이중섭미술상 30주년을 맞아 1회 수상자인 황 화백의 70년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같은 선상에서>는 노화백의 회고전과는 다르다. 오늘날까지도 화수분처럼 솟구치는 황용엽의 열정과 새로운 시도를 되짚는 신작전의 성격에 가깝다. 이번 출품되는 서른여섯 점 중 2017~2018년 작품만 스무 점에 이른다. “회고전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내 과거 작품들도 볼 수 있지만 출품작 과반은 새로운 연작들로 이뤄져 있어요. 100호나 200호짜리 신작들도 여럿 있고요. 도리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방점이 될 전시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좌)<두 사람> 45.5x37.9cm 1979, (우)<인간> 45.5x37.9cm 1975 / 아트조선
(좌)<두 사람> 45.5x37.9cm 1979, (우)<인간> 45.5x37.9cm 1975 / 아트조선
2000년대 이후부터 그는 이전 세대의 다양한 작품 스타일을 절충하고 혼합한 형식의 작품을 내보여왔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관되게 이끌어오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자 한 고민의 결과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최신작 <어느 날>, <나의 이야기>, <꾸민 이야기>(2018)에서도 이러한 양식이 나타나는데, 1970년대 보였던 회갈색의 단색조 색채를 혼합해 다시금 한국 근대사를 짚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가 두드러지면서도 선과 색을 단조롭게 그려 한결 밝아졌다. 또한 다소 수다스러운 느낌이 날 만큼 경쾌한 분위기도 일면 풍긴다. “과거의 어둡고 음울했던 색감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시대가 변하듯이 나도 그림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 변화를 꾀한 거죠. 거기에 도형적이고 토속적인 패턴으로 우리 전통문양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한국의 미(美)는 곡선에 있다고들 하는데 정작 황 화백의 작품에는 직선과 삼각, 사각 등의 도형이 자주 보인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에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오방색을 비롯해 토속 민화, 떡살무늬, 샤머니즘 등 한국적인 원형미가 더해진 덕이다. “그림이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잖아요. 작품이 오롯이 전달되려면 단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직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직선을 많이 썼죠. 직선이 곡선에 비해 단순하고 속도감도 느껴지니까요.” 또한 고유의 전통문화와 가치를 보존하려는 마음도 담겨 있단다.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박한 전통 문화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작품에 그려 넣고 있다고 황 화백은 덧붙였다. 

─ 인간에 받은 상처, 인간으로 치유하다
그의 작품 속의 올곧은 선(線)은 화면을 가로지르며 분할 구성하고 동시에 회화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이는 과거 알아주는 스키광이었던 황 화백의 고독한 취미에서 비롯됐다. -작업실 한 벽에는 그가 타던 스키장비가 세워져 있다.- 스키마니아 1세대로 혼자 스키장을 즐겨 찾곤 했다는 그는 늦은 밤 홀로 설원 위를 가파르게 내려올 때의 짜릿함이 좋았단다. 이제 더는 직접 타지 않지만, 작품에서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직선으로 스피드를 향한 열망을 대신한다. 반면, 종횡으로 얽히고설킨 선은 감옥의 철창을 뜻한다. 남북에서 각각 경험한 두 번의 영창생활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로운 취미생활과 영창에서의 구금생활, 상반되는 두 기억을 두고 황 화백은 반듯한 선을 그리며, 슬로프를 활강할 때처럼 마음 속 응어리를 해방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일평생 인간, 한가지에만 몰두했다. 다른 주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없을 수밖에요. 생명의 절박감, 그건 체험해보지 않으면 뭔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저는 언제나 생사의 기로의 연속이었으니까요.” 북한 인민군으로의 차출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피생활을 했다. 남한 국군 생활 당시 전쟁 통에 총알이 박혀 큰 수술도 치렀다. 극한 상황 속에서 생명의 가치와 삶의 존재 이유를 절감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기를 수 번. 그 때문인지 그는 그토록 인간만을 그렸지만 대부분 성별은 없다. 작품 속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들 그 이상 아니다. 그가 겪었던 것처럼 그저 구속당하고 억압당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황 화백은 여태껏 작업을 이어온 것을 두고 “사활을 건 고난의 시간과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해야 하는 사명”이라고도 말한다.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등을 몸소 겪은 그는 그야말로 한국 근대사의 산증인이기 때문.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속박당하고 숨겨야만 했던 울분으로 가득한 때였다. 이때의 절망과 공포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작품은 우리의 역사 그 자체다.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지울 수가 없어요. 나를 각인하는 그림을 그려온 셈이죠.” 인간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런 인간을 그려내며 황용엽은 상처를 회복해왔다. 처절한 비극을 화면에 담아 마주함으로써 트라우마를 치유한 것이다. 
1970년대 작업의 색감과 유사한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로 구성되는 신작. 당시 작품 속의 인간 형태와 흡사하지만 좀 더 도형적으로 변모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130.3x162.2cm 2018 / 아트조선
1970년대 작업의 색감과 유사한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로 구성되는 신작. 당시 작품 속의 인간 형태와 흡사하지만 좀 더 도형적으로 변모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130.3x162.2cm 2018 / 아트조선

─ 독자적인 조형세계 정립 위해 “화업 이어 온 지 꼭 70년”
시대는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현대가 오늘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마냥 한자리에 고여 있으면 안 된다. “창작의식이 있다면 표현양식이 계속 같을 수 없죠. 나는 그때그때의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면서도 독창적으로 끄집어내려고 애썼어요.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올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의도적인 장치를 넣어보기도 했었고… 이렇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자기만의 형과 색이 어울려 독창적인 양식이 만들어질 테고 이를 진정한 창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그 시대를 앞질러가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다. 70년간 쉼 없이 진화해오며 자신만의 고유한 회화세계를 구축해온 황용엽. “작가는 진솔하게 작업하면 자기만의 조형이 나오게 돼 있어요. 자신만의 독자적인 양식의 확립이 가장 중요하죠. 내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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