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 주말, 작품 어때?] “재활용해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입력 : 2018.08.10 17:58   |   수정 : 2018.08.10 18:06

문승지, ‘아나바다 운동’ 오마주展 <쓰고쓰고쓰고쓰자>
환경운동 시점에서 다시 환기하는 그 시절 그 운동

문승지 작가가 < Economical Chair >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가 들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그의 또 다른 작품 < Paper Pot >으로 재탄생될 예정. 다 마신 잔 안에 물과 풀을 개어 신문지 등 종이를 꾸겨 넣어 굳히면 화병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 / 아트조선
문승지 작가가 < Economical Chair >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가 들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그의 또 다른 작품 < Paper Pot >으로 재탄생될 예정. 다 마신 잔 안에 물과 풀을 개어 신문지 등 종이를 꾸겨 넣어 굳히면 화병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 / 아트조선
한 관람객이 음료수 캔을 들고 와선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통에 넣으며 당당히 외쳤다. “캔 갖고 왔어요. 컵 받침 주세요!” 쓰레기통이 아니다. 캔 수거함이다.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문승지 작가에겐 엄연히 다르단다. “저렇게 관람객이 캔을 가져다주면 완전 ‘땡큐’죠. 항상 부족해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고물상에서 사 오고 있으니까요. 누구에겐 그냥 버리는 쓰레기지만, 제게는 작품의 소중한 원료거든요.” 작가에게 이토록 귀한 재료를 몸소 공급해주는 관람객에겐 작가의 또 다른 소재인 재활용 PVC로 만든 컵 받침을 준다. ‘아나바다’ 중 ‘다’에 해당하는 다시 쓰기의 직거래 현장, 서울 장충동 파라다이스ZIP에서 열리고 있는 문승지 작가의 <쓰고쓰고쓰고쓰자> 전시장의 풍경이다. 이번 전시는 IMF 외환위기 발발 당시 등장한 캠페인인 아나바다의 정신을 본 따 기획됐다. 1998년 국가적 경제난 해소를 목표로 절약 정신에서 비롯됐던 운동이었지만, 물자가 넘쳐나서 문제가 되는 오늘날, 문승지는 아나바다를 환경 운동 개념으로 접근했다. “대학생 커플들이 손잡고 많이들 관람하러 와요. 소셜 미디어에서 사진이나 해시태그를 보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구 온난화, 플라스틱 대란 등 환경 문제와 관련한 이슈들에 대해 젊은 층의 관심이 높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의자 4개가 한 쌍인 < Four Brothers Collection >. 벽에 걸린 한 장의 나무합판에서 버려지는 부분 없이 정확히 의자 4개가 나온다. 조립식 장난감 키트 같이 생긴 나무합판을 두고 작가는 “자신의 작업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파라다이스ZIP
의자 4개가 한 쌍인 < Four Brothers Collection >. 벽에 걸린 한 장의 나무합판에서 버려지는 부분 없이 정확히 의자 4개가 나온다. 조립식 장난감 키트 같이 생긴 나무합판을 두고 작가는 “자신의 작업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파라다이스ZIP
문승지는 서울과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가구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생산폐기물을 최소화한 의자 <Four Brothers Collection>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Four Brothers Collection>은 한 장의 나무합판에서 4개의 각기 다른 의자가 나오도록 정확히 재단한 것이다. “합판이 꼭 종이접기 같이 생기기도 했죠? 이는 제 작업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버리는 조각 하나 없이… 즉 낭비를 최소화하고 싶은 제 디자인 철학을 나타내는 거죠.” 그가 아끼고 싶은 것은 물자뿐만이 아니다. 자투리 공간이라도 허비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만든 것이 <130˚ Sofa>다. 가구 설치 위치 등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빈자리를 활용해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아나바다 중 나눠 쓰기를 실천하고자 했다. 또한 의자를 보관하거나 운반 시 낭비되는 공간이 없게 각 의자는 서로 포개져 쌓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실제로 그가 만든 의자 대부분은 겹치거나 쌓아서 보관하기 쉽다. 
(좌)< Mini Module >, (우)< Peep Peep Collection Stool > / 파라다이스ZIP
(좌)< Mini Module >, (우)< Peep Peep Collection Stool > / 파라다이스ZIP
인터넷상의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간이 모듈팩토리 <Mini Module>. 여기에 알루미늄캔을 녹여 <Peep Peep Collection Stool>을 만들었다. 스툴 한 개당 300개가 넘는 알루미늄캔이 들어간다. 같은 라인의 다른 의자를 만드는 데에는 500개 이상이 필요하다고. 이번 전시에 어림잡아 수천 개의 알루미늄캔이 말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조선일보는 환경 캠페인 ‘환경이 생명입니다’를 시작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해 자연환경과 우리의 삶을 지키자는 취지다. 조선일보 환경 캠페인을 필두로, 최근 커피숍 일회용 컵 줄이기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비닐, 플라스틱의 사용량을 줄이는 데 적극 호응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처럼 환경보호는 일상 속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아나바다 운동이 절실한 적시적기가 아닐까. "아나바다는 그 시절 우리가 행했던 품격 있고 의식 있는 운동이었어요. 여러 환경 문제에 당면한 지금, 아나바다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 전시장 오실 땐 알루미늄캔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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