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공연, 바로 이런 것···창극 '심청가'

입력 : 2018.04.27 09:31
심청가
심청가
창극의 본디꼴인 판소리는 서사성이 강력하다. 1인 공연인 판소리가 분창(分唱) 형태로 무대화된 것이 창극이다. 갖은 실험에도 이 장르에 그려진 정경이 분명한 이유다.

25일 개막한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 '심청가'는 오롯이 판소리 서사의 흥취와 경치에 집중한다. 창극의 대형·현대화에 성공한 국립창극단이 외향은 최대한 걷어내고, 판소리를 파고들었다. '판소리 귀 명창'이 혹할 무대다.

심 봉사 역의 유태평양과 어린 심청 민은경·황후 심청 이소연 간 부녀의 애정은 판소리의 황홀경이다. 부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판 뒤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들끓는 소리의 행간에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친다.

반면 용궁에서 구해져 연꽃으로 환생으로 뒤 봉사들을 위한 다양한 잔치를 열어 부친과 재회할 때는 햇살 같은 싱그러움과 기쁨을 잔뜩 머금고 있다. 듣는이의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는 소리의 힘을 입고 현실이 된다. 판소리의 들끓는 한, 어깨와 엉덩이를 저절로 들썩이게 하는 흥의 핍진성은 감동과 희열의 시김새다.

이로 인해 극을 보면서 단순히 상념에 젖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진짜 세상에 대한 전경을 펼쳐내며 몰입감을 안긴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연습과 리허설을 보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고 말했다.

"얼씨구" "어이" "좋다" 등 객석에서는 추임새가 절로 터진다. 청중이 조용히 관람하는 고급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이 열린 판이 된다. 관객은 극 속으로 점차 빨려 들어간다.

5시간이 넘는 원작을 핵심 내용만 압축해 2시간15분(인터미션 제외) 분량의 대본으로 구성했다. 탄성을 자아내는 장면들로 넘치지만, '범피중류'가 객석의 심방과 심실을 휘젓는다. 심청을 실은 배가 망망대해로 떠나가는데 해안의 절경이 펼쳐지는 내용이다. 본래 홀로 부르는 이 곡이 합창으로 재편돼 울려 퍼질 때 클래식 합창곡의 장엄함, 대형 뮤지컬 1부 마지막 넘버의 세련됨을 넘어서는 아득함이 밀려온다.

'심청가'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 손진책의 정갈한 연출,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의 미니멀리즘에서도 장면마다 모든 풍경을 담은 무대, 한복 패션브랜드 '차이킴' 김영진 디자이너의 아정한 의상은 소리에 날개를 단다. 오브제로 사용한 부채가 지팡이, 빨래 등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일품이다.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의 신구 조화도 작품의 완결성에 한몫한다. 작창과 도창(導唱)의 안숙선은 카리스마와 능수능란함을 고루 갖췄고, 뺑덕 역의 김금미도 짧은 분량이지만 위트가 넘치는 신스틸러다. 민은경의 어린 심청, 이소연의 황후 심청은 애틋함이 맑아서 슬프고도 기뻤다. 특히 스물여섯에 심 봉사 역을 맡은 유태평양은 종횡무진했다.

'심청가'는 국립창극단이 여러 실험을 통해 창극 팬을 끌어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창극의 원형을 유지한 공연도 관객을 충분히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작품이다.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의 극치로 전통성을 유지한 창극이 새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힙스터 공연이다. 5월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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