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이 한뜻으로 한 音… 독주자 안 부럽죠"

입력 : 2018.04.03 01:37

쿠르트 마주어부터 판즈베던까지… 뉴욕 필하모닉 '산증인' 미셸 킴
10년 전 로린 마젤과 평양 공연도 "진실로 음악 나누려면 낮은 곳으로"

"내게 뉴욕 필 첫 지휘자였던 쿠르트 마주어는 신들린 듯 혼신을 다해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이죠. 앨런 길버트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새 음악감독 야프 판즈베던은 화끈한 공붓벌레랍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지휘자는 로린 마젤(1930~2014). 악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지만 절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헐뜯지도 않았지요."

176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전설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봉을 잡았던 미국의 간판 교향악단이다. 그곳에서 17년째 부악장으로 활약하는 미셸 킴(한국명 김미경·45)은 '뉴욕 필 영욕의 역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산 증인'. "100명이 한뜻으로 한 음을 내는 건 소름 끼치도록 짜릿하다"는 그는, "그 맛에 매료돼 뉴욕 필에 전력을 다했다"며 웃었다.

뉴욕 필 부악장으로 17년째 활약하는 미셸 킴은 2년 전 솔리스트로도 데뷔했다. 그는 “뉴욕 필에서 다진 기교를 여우처럼 써먹겠다”며 웃었다. /장련성 객원기자
뉴욕 필 부악장으로 17년째 활약하는 미셸 킴은 2년 전 솔리스트로도 데뷔했다. 그는 “뉴욕 필에서 다진 기교를 여우처럼 써먹겠다”며 웃었다. /장련성 객원기자

초등 5학년 때 미국 LA로 이민 가 서던캘리포니아대 손턴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고3 때 대통령 장학생으로 뽑혀 케네디센터와 백악관에서 연주했다. 2001년 3월 뉴욕 필에 입단해 마주어부터 마젤, 길버트, 판즈베던까지 명(名)음악감독들과 일했다. "부악장은 악장과 함께 지휘자의 음악 해석을 단원 모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성격이 둥글고, 빨리 배워야 하며, 눈치도 있어야 하죠, 하하!"

제주교향악단·수원시향 등과 협연하기 위해 지난주 한국에 온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로 2008년 3월 '뉴욕 필 평양 공연'을 꼽았다. 당시 음악감독인 로린 마젤의 통역을 맡기도 했던 그는 "조부모님이 평북 선천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월남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평양행이 설�다"고 추억했다. "동료들과 북한 음악 꿈나무들도 지도했는데, 기계적일 만큼 '완벽'한 솜씨를 자랑하더군요. 악기의 갈라진 틈새로 본드가 삐져나왔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그는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공연한 것에 회의를 느꼈다"고도 했다. "진실로 음악을 나누는 대사(大使)가 되려면 아이들과 여성, 병든 노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까웠죠."

2010년 그가 '더블스톱 재단'을 만든 건 음악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더블스톱(double stop)이란 두 개의 줄을 동시에 치는 주법으로 "같이 가자"는 뜻. 해마다 가난한 학교에 악기를 기증하고, 젊은 음악도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빌려준다.

뉴욕 필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이지만, 2년 전 미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 심포니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협연하면서 '아줌마 솔리스트'로도 데뷔했다. "어느새 사춘기 남매의 엄마가 되고 보니 '나는 누구인가'를 곱씹게 됐지요. 이젠 날 위해서도 연주하고 싶어요."

지난달 24일엔 서울 신촌성결교회에서 지적 장애아들의 연주 그룹인 프리즘 앙상블과 '사랑 콘서트'를 열었다. "악기를 통해 자신의 모든 걸 토해내는 모습에 눈물이 났어요. 음악이 주는 기쁨이자 감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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