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끝없이 질문 던지는 카프카 원작 부조리劇

입력 : 2018.04.01 23:41

성(城)

한바탕 우습고 슬픈 악몽을 꾼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을 옮긴 국립극단 연극 '성(城·연출 구태환)'은 무대 위뿐 아니라 관객 머릿속에도 눈보라를 일으킨다. 모호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원작이 선명한 캐릭터와 간결한 대사로 다시 태어난 데 한 번 놀라고, 이야기가 150분 내내 흥미진진한 데 한 번 더 놀란다.

고위 관료(오른쪽 위)가 등장하자 깜짝 놀라는 토지측량사 K(왼쪽 아래)와 심부름꾼. 연극‘성’은 원작 속 모호한 성의 모습을 솜씨 좋게 시각화했다. /국립극단
고위 관료(오른쪽 위)가 등장하자 깜짝 놀라는 토지측량사 K(왼쪽 아래)와 심부름꾼. 연극‘성’은 원작 속 모호한 성의 모습을 솜씨 좋게 시각화했다. /국립극단
성주(城主) 백작의 초청으로 온 토지측량사 K. 성은 분명 저기 눈앞에 있는데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수상쩍다. K는 그 속에서 이리저리 차인다. 잠과 허기를 참지 못하거나 고위 관료의 애인이던 여자에게 집착한 탓에 성으로 갈 기회를 계속 놓친다. 관객은 끝없는 생각의 미로를 헤맨다. 성은 무엇이고 K는 왜 가지 못하는가. 그가 겪는 부조리, 선의, 거짓말, 두려움, 애정은 다 무슨 의미인가.

무거운 소재지만, 연극은 재치 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리듬을 만들어낸다. 특히 성에서 파견한 K의 조수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 콤비는 무성영화의 채플린을 본뜬 듯 재기 발랄하다. 문서와 관료로 가득 찬 클라이맥스의 성 표현은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장관이다. 연극평론가 이성곤 한예종 교수는 "원작의 추상적 공간과 인물 관계를 시각적으로 잘 풀어냈다. 여러 캐릭터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친근하게 만들어내 대중이 폭넓게 공감할 것"이라 했다.

각색을 맡은 이미경 작가는 "카프카는 독자가 성의 실체에 직면하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발을 떼고 기꺼이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했다. 극의 마지막, 끝내 성에 가지 못한 K는 눈보라 속에서 소리친다. "성에 가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어!" 하지만 성은 여전히 멀리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불 꺼진 무대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의 성은 어디이며 왜 거기에 가려 하느냐고. 공연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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