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2차피해 막아달라"

입력 : 2018.03.23 09:35
이윤택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기자회견
이윤택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기자회견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성추문으로 불 붙은 연극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과 관련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함께 극단에 몸담았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 또는 방조자로 규정짓는 사례가 온라인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상습강제추행 피해자들의 공동변호인단'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사회 그 어디에서도 연희단거리패 출신 단원들이나 피해자들에게 일체의 2차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혜겸 변호사는 "이윤택의 개인적 죄를 묻는 일이 연희단거리패가 걸어 온 그동안의 모든 공연과 열정적으로 삶을 불태우면서 서 온 피해자들의 무대와 인생을 왜곡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윤택으로 인해 힘들고 아픈 기억도 많고 부당한 일들도 헬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서로가 잘 알기에, 선후배 동료들간에 서로를 지켜주고 격려해주면서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연희단거리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악성 댓글이 붙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극단에서는 '연희단거리패' 출신에 대해 '말이 많으니 가능하면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언급까지 했다는 말이 들리는 상황이다. 어느 배우는 '연희단거리패' 출신이라는 이유로 강사직에서 좇겨나듯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립극단이 오는 4월 6~22일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말뫼의 눈물'에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남미정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연극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과거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맡았던 만큼, 최근 이윤택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한편의 주장이었다.

특기할 만했던 점은 이 작품이 이 전 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쓰고 연출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 6일 국립극단 홈페이지를 통해 "남미정 선배님은 같은 극단 출신의 제 선배님이시며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몇 년 전에 극단을 나왔고 지금은 제가 대표로 있는 극단 미인의 배우"라면서 "선배님은 연희단 거리패의 정상화를 위해 누구보다 애쓴 분이며 이윤택에게 온갖 인격적 모욕을 견디다 못해 극단을 나오게 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중 연희단 거리패 출신이 많다면서 "그들은 연극을 사랑하고 좋은 작품을 위해 지금도 자신을 깎아가며 노력한다. 그런 분들을 연희단 거리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보다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청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설 무대가 많은 기회의 극단이고, 그곳을 거쳐간 모든 이들이 가장 열정을 바친 곳인지라 아프고 비참한 기억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보낸 선후배 동료간의 행복한 추억들이 훨씬 많은 곳"이라면서 "연희단에 대한 그런 열정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이윤택에 의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인격 모욕과 경제적 부당함과 다양한 형태의 끔찍한 폭행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변호인단은 "이윤택으로 인한 상상하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을 불태운 연희단 출신들을 격려해 달라"면서 "이전처럼 이들의 재능과 열정을 높이 보아 주시고, 연극을 사랑해서 인생을 불태우는 연극인으로 계속 남아 있도록 해 주시길 특별히 당부드린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 전 감독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성폭력 혐의 이외에도 그의 재산은닉 시도 등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재산 형성 과정, 단원들을 이용한 부당 재산 증식, 장부 조작 증거인멸 등의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민형사상 조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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