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 "亞첫 주빈국...한국 연극 다양성 알릴것”

입력 : 2018.03.23 09:35
홀거 슐체
홀거 슐체
"반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는데 많이 놀랐어요. 한국 연극계의 규모가 컸고, 정말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주한 독일문화원과 함께 '2018년 한독 문화예술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첫 시작으로 '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하이델베르거 스튀케마르크트)에서 한국주간 행사를 지원한다.

22일 오전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올해 한국을 주빈국으로 삼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의 홀거 슐체 예술감독은 "아시아 국가 중 주빈국에 선정된 건 한국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은 1984년 출발했다. 매년 8000명의 관계자와 관객이 함께 한다. 독일과 해외의 공연예술, 희곡 그리고 타 문화의 미학을 알리고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슐체 감독은 "한국이 가진 연극의 다양성을 알리고 싶었다"면서 "이번에 선별한 작품들은 주제뿐만 아니라 형태도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는 4월 27~29일 진행되는 한국 주간에는 총 8작품이 초청됐다. 축제에 참가하는 한국예술단 규모를 60명가량으로 예상된다. 우선 연극이 3편이다. 기존 세계 고전을 한국식으로 재창조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극단 여행자(예술감독 양정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젠더 이슈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재창작으로 현지에서 선보인다.

주인공 윌리의 삶을 그가 60분 러닝타임 내내 달리는 트레드밀로 표현한 극단 성북동 비둘기(대표 겸 상임연출 김현탁)의 '세일즈맨의 죽음', 세월호 참사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풀어내 통찰을 안긴 크리에이티브 바키(대표 겸 연출 이경성)의 '비포애프터'가 포함됐다.

희곡 역시 3편이 현지에서 낭독공연 형태로 선보인다. 한국 근현대사를 압축한 연출가 겸 극작가 김재엽(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대표·세종대 교수)의 '알리바이 연대기', 한국의 설화를 은유적으로 녹여낸 극작가 고연옥의 '처의 감각', 안산을 배경으로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극작가 이양구의 '노란 봉투'다. 이들 세 희곡 작품은 5000유로(약 660만원)에 걸린 경연에도 참가한다.

이와 함께 아방가르드 그룹 '어어부프로젝트' 멤버인 음악감독 장영규와 소리꾼 이희문 등이 뭉친 팀으로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대표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한 '씽씽밴드' 공연, 디자이너 겸 작가 김황의 전시 '모두를 위한 피자'도 현지에서 선보인다.

슐체 감독은 "연극뿐만 아니라 공연, 전시를 통해 한국사회와 구조를 독일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이전에 멕시코가 주빈국이 선정된 이후 남아메리카와 독일 간에 많은 협업이 이뤄졌다. 한국과도 비슷한 경험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를라 슈투켄베르크 주한독일문화원 원장은 "독일어와 독일어 문화 전파 만큼 한국문화를 독일에 알리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이번 '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은 한국의 작품을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연극인들 중에는 이미 독일과 인연을 맺는 예술가들이 많다. 양정웅 연출과 이경성 연출은 지난 2014년 '베를린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공동 공연' 등을 비롯해 독일에서 여러 번 공연했다.

이경성 연출은 "독일 연극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나 이슈들은 연극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개인과 사회에 중요한 이슈를 끈질기게 다루고자 하는 태도가 묻어나 인상적"이었다면서 "동시에 단순히 한국공연을 소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워크숍과 관객과의 대화 등을 통해 언어의 번역이 아닌 문화적 번역을 시도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더 기대감이 든다"고 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 겸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고연옥 작가는 "그로부터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을 파고들어 보편성을 끌어내는 것이 연극의 본질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이번에 연극과 희곡이 현지에서 어떤 인상을 남기게 될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연구년을 맞아 1년간 독일 베를린예술대에 방문교수로 체류했던 김재엽 연출은 "드라마투르그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체가 연극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공유하는 모습으로 보였다"면서 "한국에서는 다분히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극장으로 보는데 깃발을 꼽는 자체가 공유돼 있는 것이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고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총연출을 맡았던 양정웅 연출은 예전부터 독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영향을 짙게 받아왔다고 밝혀왔다. 그는 "축제에서 한 나라를 주빈국으로 선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특이한 역사, 정치, 방향을 갖고 있는 한국의 문화예술이 낯설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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