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들인 조형물, 주민들은 섬뜩하다는데…

입력 : 2018.03.15 01:02

대구 달서구, 선사시대 관광테마… 길이 22m 원시인 조형물 설치
주민 1700명 "흉물같다" 철거 청원

"저걸 보면 섬뜩합니다. 밤에 귀신이 나올까 무섭습니다."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에 들어선 거대한 조형물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설치에 세금 5억원이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철거 청원까지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서울역광장에 설치됐던 '슈즈트리'를 연상시키는 '흉물'이라고 지적한다.

대구에 들어선 조형물은 옆으로 누운 원시인이다. 달서구청이 지난해 12월 제작을 시작해 최근 완성했다. 길이 22m, 높이 6.8m로, 가까이에서는 형상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콘크리트 뼈대에 회반죽을 덮어 돌조각처럼 보인다. 달서구청은 "일대를 선사시대 주제로 꾸미는 관광 사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2006년 달서구 월성동 아파트 개발지에서 1만3000점의 구석기 유물이 나왔고, 진천동과 상인동에서는 고인돌이 발견됐다.

대구 달서구 상화로에 가로 22m, 높이 6.8m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박원수 기자
대구 달서구 상화로에 가로 22m, 높이 6.8m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박원수 기자
조형물 제작에 2억원, 안내 표지판과 벽화에 약 3억원을 들여 총 사업비는 약 5억원이다. 조형물의 기획과 디자인은 '광고 천재'로 알려진 이제석씨가 맡았다. 이씨는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으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씨는 "이 지역에 묻혀 있는 역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인근 식당과 교회, 일부 주민이 거세게 반대에 나섰다. 조형물 바로 뒤에 있는 한식당의 배남희(58) 사장은 "크고 못생긴 것을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까지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조형물 옆에 있는 진천교회의 소재영(63) 담임목사도 "교회 바로 앞에 거대한 조형물을 설치해 신자들이 매우 꺼림칙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의 여론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주민 김혜란(38)씨는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주민 이현창(66)씨도 "언뜻 보면 무덤같이 생겨서 겁이 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조형물 설치 과정에서 주민 동의를 거치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들었다. 주민 최진혁(64)씨는 "달서구청이 원래는 100m 떨어진 아파트에 설치하려다 그곳 주민의 반대로 무산되자 은근슬쩍 이곳으로 옮겨와 설치했다"며 "수억원을 낭비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교회 신자들과 일부 주민은 주민 1700여명의 서명을 받아 달서구의회에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다.

달서구청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창운 달서구 문화체육관광과장은 "주민들의 여론을 심도 있게 파악해 보완 공사를 할 수는 있으나 당장 철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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