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 지휘자도 '미투' 못 피해

입력 : 2018.03.14 03:52

美 최고 거장 제임스 러바인 해고… 30여 년 전 소년 성추행 드러나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가 12일 밤(현지 시각) 지휘자 제임스 러바인(74·사진)을 공식 해고했다. 30여 년 전 그가 10대 소년 여러 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불명예 퇴진한 지 3개월여 만이다.

메트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자체 조사 결과, 러바인이 예술가들에게 성적(性的)으로 폭력적 행동을 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특히 최근까지 메트의 명예 음악감독과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러바인이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연약한 이들을 괴롭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메트 이사회가 1979년 러바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투서를 받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40년 가까이 모른 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 없다"고 부인했다.

러바인의 성추행이 불거진 건 2016년 10월. 아쇼크 파이라는 40대 남성이 16세 때인 1986년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음악감독을 맡고 있던 러바인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며 일리노이주(州)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크리스 브라운과 제임스 레스톡 등 다른 남성 2명도 수십 년 전 10대 때 러바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메트는 성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러바인의 말을 믿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미국의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지자, 러바인의 성추행도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43년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유대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러바인은 1954년 11세에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며 데뷔했다. 1975년부터 메트의 음악감독을 맡아 40년 넘게 이끌고 2500회 넘는 공연을 지휘하면서 메트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1983년 타임지는 표지에 그의 사진을 싣고 '미국 최고 지휘 거장'이란 제목을 달았다. 파킨슨병을 앓는 등 건강 악화로 2016년 명예 음악감독이 됐다. 지난해 12월 베르디의 '레퀴엠' 지휘를 끝으로 갑작스럽게 메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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