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끈 채 안대 끼고 연습… '인생 연주' 기대하세요

입력 : 2018.03.07 00:25

2년만에 돌아온 피아니스트 임동혁

예술의전당서 '슈베르트' 독주회… 아르헤리치에게 레슨도 받아
"희로애락 담긴 연주 선보일터"

겉옷을 벗는데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머리카락은 보기 싫게 엉켰다. 털썩 무너져 앉는 그를 보며 인터뷰를 미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오랜만에 해 뜰 때까지 마셨어요. 염려 마세요. 정신은 말짱해요."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3위·수상 거부)와 2005년 쇼팽 콩쿠르(3위),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1위 없는 공동 4위)를 휩쓸며 클래식 연주자로는 드물게 10대 때부터 뜨거운 팬덤을 누려온 피아니스트 임동혁(34). 그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연다. 부산·대구·울산·천안을 도는 이번 리사이틀의 부제는 '그의 슈베르트'. 슈베르트 서거 190주년을 기려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D 935)'과 피아노 소나타 중 최고 걸작인 21번으로 채운다.

2년의 동면(冬眠)을 털고 슈베르트라는 새로운 날개를 단 임동혁. 그는“베토벤은 어려운데 슈베르트는 편해요. 천성이 비슷한가 봐요”하며 웃었다. /이진한 기자
2년의 동면(冬眠)을 털고 슈베르트라는 새로운 날개를 단 임동혁. 그는“베토벤은 어려운데 슈베르트는 편해요. 천성이 비슷한가 봐요”하며 웃었다. /이진한 기자
2년 만의 독주회를 앞두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임동혁은 볼살이 도드라지게 올라 있었다. "10㎏이나 쪘다"고 했다.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쓰고 있어요. 연습도 규칙적으로 하고. 예전엔 한참 연습을 안 할 때도 있었는데, 이젠 불안감이 들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 군더더기 없는 테크닉, 다양한 색채감을 표현하는 음색'. 해외 언론의 평처럼 임동혁은 낭만주의 작품에서 유독 빛을 발한다. 올 초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열린 '한국 평창의 밤'에서도 그는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일부를 연주했다. "브람스는 시기상조이고, 베토벤은 힘들고, 모차르트는 자신 없고, 슈만은 좀 기괴하고, 바흐는 했고, 쇼팽도, 라흐마니노프도 했으니 실은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홀가분해요. 10년 전 한 팬이 슈베르트의 소나타 21번을 연주해달라며 악보를 줬거든요. 그때부터 빠져들어서 언젠간 꼭 선보이고 싶었어요. 마침내 때가 왔죠." 그는 "'임동혁은 쇼팽만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슈베르트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찾아가 레슨도 받았다. 그의 삶에서 아르헤리치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0년 부조니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 예선 때부터 우승자로 꼽혔지만 5위에 그쳤다. 심사 결과에 격분한 아르헤리치의 강력 추천으로 음반사 EMI클래식에서 데뷔 음반을 냈다. 이 음반은 그에게 2002년 황금 디아파종상을 안겼다. 레슨을 받은 건 수년 만의 일. "욕심이 났어요. 정작 그분은 '슈베르트 잘 몰라' 하며 자신 없어 했지만 제가 '에이, 뻥치지 마세요' 했죠, 하하!"

불 끈 방에서 안대를 낀 채 연습한다. "패닉(공황) 상태를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하나의 상황극"이다. "2000명 청중 앞에서 후들거리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했다. "무대에 많이 선다고 편해지진 않아요. 언제나 떨려요." 공연 한 시간 전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때 미친 듯이 연습하죠."

그는 "지난 몇 년간 겪은 희로애락이 내 피아노에 묻어나 소리 자체를 달라지게 했다.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혼자 방구석에서라도 좋으니 이대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임동혁은 잠시 말을 끊었다. "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돼 있어요."

임동혁은 오는 7월 BBC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아르헤리치와 듀오로 심포닉 댄스를 녹음한다. 음반은 워너클래식에서 내년에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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