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물같은 아티스트 아냐… 연주 요청에 답도 잘 안 해"
2004년 이탈리아의 한 극장. 피아니스트는 대기실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난 못해." 청중은 이미 차 있었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그를 안심시켰다. "왜 두려워해? 우린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할 건데!"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보였다. 객석은 환호와 갈채를 쏟아냈다. 이틀 뒤 피아니스트는 녹음본을 들으며 불만스러워했다. "지나치게 기교를 부렸네." 피아노의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77·사진)였다.
'역대 최고 피아니스트' 열 손가락에 꼽히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아르헤리치의 평전이 나왔다. '마르타 아르헤리치'(현암사)는 클래식 변방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숱한 명연주를 남긴 아르헤리치에 관한 최초의 전기다. 저자 올리비에 벨라미는 그의 삶과 음악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찬양 일변도의 위인전이 아니다. 당당하면서도 예민하고 굼뜨고 부산한 완벽주의자 아르헤리치의 인간적 면모를 모았다.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세 살 때 유치원에서 한 친구가 "넌 피아노 못 치지!"라며 약 올리자 아르헤리치는 즉석에서 낮잠 시간 들었던 자장가를 연주해냈다. 일곱 살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했다. 열한 살 땐 남미 최대 극장인 테아트로 콜론 무대에 섰다. 1957년 제네바와 부조니 콩쿠르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정작 본인은 노예 같은 순회 연주자 삶에 넌더리를 냈다. 1960년 연주 활동을 중단하고 스물셋에 첫딸을 낳았다.
그의 피아니즘은 여성스러움과 반대였다. 힘찬 손놀림으로 피아노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폭발력을 배가했다. 196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정상에 올랐다. 신화를 썼지만 "나는 선물 같은 아티스트가 아니다. 연주 요청은 많지만 답도 잘 안 주고, 계약서에 사인도 안 하고, 취소도 자주 한다. 나는 연주를 듣는 게 더 좋다"며 겸손해했다.
평론가 강헌은 "'여류(女流) 피아니스트'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는 아르헤리치의 등장과 함께 폐기됐다"고 썼다. 반백의 머리에 싸구려 목걸이, 알록달록한 천 가방을 들고 다니지만 비웃음 살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순간의 덧없음을 날카롭게 의식하며 "살아가고, 살게 하라" 는 그의 초상이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