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창극으로 펼친 '빨간 망토'… 1인극의 편견을 깨다

입력 : 2018.03.02 01:18

소녀가

"시원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거추장스러운 옷가지, 사회의 굴레와 도덕 준칙 다 벗어던지고 맘껏 뛰어다니는 소녀가 된 듯 시원하게요."

국립창극단의 창작 시리즈 첫 작품 '소녀가' 연습을 보러 갔을 때, 연출을 맡은 소리꾼 이자람(40)은 "이 작품의 키워드는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했다. 그는 판소리와 뮤지컬, 인디밴드 보컬을 넘나들며 명성을 쌓아온 공연예술가. 이번엔 극본·연출·작창·작곡·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이다.

빨간 망토 소녀와 엄마, 늑대에 까마귀 고양이까지 혼자 표정과 몸짓, 목소리로 모두 표현하는 ‘소녀가’의 소리꾼 이소연. /국립창극단
빨간 망토 소녀와 엄마, 늑대에 까마귀 고양이까지 혼자 표정과 몸짓, 목소리로 모두 표현하는 ‘소녀가’의 소리꾼 이소연. /국립창극단

지난 2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처음 오른 '소녀가'는 매회 차 매진되며 흥행 중이다. 유럽 설화 빨간 망토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랑스 소설이 원작. 늑대에 쫓기다 사냥꾼에게 구원받는 동화 속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이자람이 만들어낸 빨간 망토는 해맑고 순수하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하며, 때로 교태롭고 에로틱하다.

이 독창적 빨간 망토를 연기하는 배우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서편제'로 스타덤에 오른 국립창극단 '아이돌 소리꾼' 이소연이다. 연기·판소리·창가·춤·마임 등 몸짓과 목청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동원해 60분간 홀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강철 드레스와 신발을 빨리 벗어던지려 나무와 바위에 몸을 비빌 땐 객석에 웃음이 터진다.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가 침대 속에서 소녀를 부를 땐 관객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 방 세게 얻어맞았는데 씩 웃음이 나는 것 같은 공연. 창극이나 전통 소리, 혹은 1인극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장르적 편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편견이 깨진 자리에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속박했던 코르셋과 빨간 망토를 벗어던진 소녀가 당당한 인간이 되어 서 있다. 상쾌한 경험이다.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은 "창극 연출을 해 본 적 없는 이자람에게 선뜻 연출을 맡긴 것은 오랜 세월 두텁게 쌓인 이자람이라는 예인(藝人)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소녀가'는 그런 주변의 믿음과 기대에 대한 이자람과 이소연의 우아한 보답이다. 공연은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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