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조연 '드럼', 무대 위 주인공이 되다

입력 : 2017.11.27 01:25

'버드맨' 음악 맡은 드러머 산체스
지난 25일 열린 내한 공연서 영화음악 해설과 연주 선보여

"영화도 이상했지만 대본을 받았을 때는 훨씬 더 이상해서 겁먹었을 정도였죠(웃음)."

25일 낮 3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작인 영화 '버드맨'(2014)의 음악을 맡았던 멕시코 출신의 드럼 연주자 안토니오 산체스(46)의 말에 객석에선 웃음이 번졌다. 산체스는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와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가 이끄는 그룹의 드러머로 활동한 뒤 2007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낮 공연은 '버드맨'의 영화음악을 해설하고 직접 실연으로 들려주는 '버드맨 경험하기'. 이 영화는 '21그램'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을 연출한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54)의 작품이다. '버드맨'은 일부 클래식 곡을 제외하면 영화음악 대부분을 산체스의 드럼으로 채우는 파격적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 오케스트라와 밴드에서도 언제나 뒷자리인 타악기가 영화음악에서 전면에 부각되는 건 지극히 드물다.

25일 두 차례 열린 멕시코 드럼 연주자 안토니오 산체스의 내한 공연. 낮 공연에선 영화음악가, 저녁엔 재즈 드러머라는 두 모습을 보여줬다. /LG아트센터
25일 두 차례 열린 멕시코 드럼 연주자 안토니오 산체스의 내한 공연. 낮 공연에선 영화음악가, 저녁엔 재즈 드러머라는 두 모습을 보여줬다. /LG아트센터

이날 산체스는 영화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도 곁들였다. 대개 영화음악은 촬영을 마친 뒤에 작곡에 들어간다. 하지만 '버드맨'은 산체스의 즉흥 연주로 음악부터 녹음한 뒤, 이 음악을 배우들에게 들려주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에 음악을 맞춘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음악에 영화를 맞춘 것이다. 산체스는 "찍지도 않은 영화 장면을 상상하면서 감독님이 문을 여닫거나 거리를 걷는 시늉을 하면 그 모습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악상(樂想)을 자유롭게 연주했다"고 말했다.

한 시간여의 해설 음악회가 끝나고 이날 저녁 7시 산체스는 5인조 재즈 밴드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의 리더로 다시 같은 무대에 섰다. 낮에는 영화음악가, 저녁에는 재즈 드러머로 두 모습을 하루에 연달아 보여준 것. 이들은 2015년 발표한 음반 수록곡인 '머리디언 모음곡(Meridian Suite)'을 연주했다. 재즈 연주곡이지만 클래식 음악의 5악장 형식이라는 점이 독특했다.

베이스와 피아노, 색소폰 연주자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악기를 번갈아 잡으면서 전통과 현대적 사운드를 모두 들려줬다. 여성 보컬이 가사 없이 읊조리듯 부르는 스캣(scat) 창법으로 색소폰 연주자와 함께 '이중주'를 펼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클래식과 재즈, 로큰롤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독특한 매력에 두 시간 공연이 끝난 뒤에도 1000여 관객의 환호는 잦아들 줄 몰랐다. 조연(助演)인 줄만 알았던 드럼이 주연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깜짝 반전(反轉)을 선사한 무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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