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편의 대하 드라마같은 창극의 변화 '산불'

입력 : 2017.10.30 10:24
'산불'
'산불'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신작 창극 '산불'은 연출과 배우와 무대가 보인다. 차범석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연극 연출가 이성열이 매만졌다.

창극은 소리꾼들의 소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극은 소리가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이 점철된 소리 하나면 끝내주는 창극이 됐다.

'산불'은 소리에 앞서 확실한 이야기가 있다. 남자들이 질러놓은 전쟁이라는 불로 인생이 활활 타는 여성들의 수난사다.

1951년 겨울 6·25동란으로 노인과 과부만 남은 지리산 자락 촌락에 젊은 남자 규복이 숨어든다. 규복을 동시에 보살필 수밖에 없는 점례와 사월이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꿰뚫는다.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이소연은 뮤지컬을 넘나들며 다진 연기력과 깨끗한 소리로, 수동적으로 굴곡진 인생의 점례를 살아낸다.

인턴 단원으로 이번에 사월 역으로 파격 발탁된 류가양은 그간 팜 파탈로 그려진 이 캐릭터를 안쓰럽게 만들었다. 점례에게 규복을 함께 보살피자고 한 이유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걸 넘어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였다는 걸 보여준다. "다들 참고 사는데 왜 너만 그래"라고 울부짖는 사월의 모친인 최씨 역의 김금미도 기억해야 한다.

'산불'은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전 마지막 창극이다. 해오름은 세로 폭 대비 가로 폭이 넓어 무대를 활용하는데 힘들다.

'산불' 역시 1막에서 배우들의 동선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탓에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공연 시작 전부터 병풍처럼 펼쳐진 실제 대나무 1000 그루는 사실감을 더한다. 회전무대를 통한 공간의 효과적인 사용 역시 탁월했다.

창극에서도 이렇게 연출과 배우와 연기와 무대로 드라마가 가능하다. 비로소 여기에 소리가 방점을 찍고, 시너지를 낸다. 작곡·음악감독을 맡은 장영규는 소리의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세련됨을 더했다.

스산한 분위기와 위트를 오가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까마귀들, 당시 억울한 시대 상황을 압축한 죽은 원귀들을 맡은 코러스들이 극에 안정감을 더한다.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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