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바흐 연주는 발가벗고 무대 서는 듯"

입력 : 2017.08.30 09:40
양성원
양성원
■13년만에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발매
9월부터 부산·인천·여수·서울서 전국 투어

"바흐를 연주할 때는 발가벗고 무대에 서는 것 같아요. 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가장 투명해져야만 하는 연주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13년 만에 다시 녹음해 발매한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통하는 양성원 교수(50·연세대 음대)는 여전히 바흐가 두렵다고 했다. 그는 바흐의 첼로 곡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 연주자다.

29일 오전 정동에서 만난 양성원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어디에서든 한두곡을 연주해도 항상 새롭고 많은 가능성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죠. 무한함을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왜 다시 바흐를 녹음하냐는 질문을 받아요. 레코딩 작업은 하나를 마무리짓는 파이널이 아니에요. 계속 쓰어져 가는 이야기 안에 한 챕터죠. 같은 곡이라도, 다른 표정으로 나타나는 챕터가 아닐까 해요."

바흐의 곡들은 어느 작곡가의 곡보다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점들로 인해 바흐는 투명한 곡이고 그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 훈장 슈발리에(기사장)을 받은 올해 양성원의 나이는 만 50세. 즉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바흐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이유다.

"2004년 녹음 당시에는 (첼로의 현을 누르는) 왼손으로 연주를 했어요. 음표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죠. 지금은 (활을 쥐고 있는) 오른팔로 연주해요. 즉 활로 연주한다는 것입니다. 활로 연주한다는 건 악기와 훨씬 더 가까워졌다는 이야기에요. 음표 밑에 또는 위에 또는 뒤에 있는 음색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가지고 있는 즉 태어난 소리와 제가 연주하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소리를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오른팔로 연주하는 건, 첼로와 저를 연결을 해서 바흐를 찾게끔 도와주는 거죠."

지난 2004년 녹음해 이듬해 EMI를 통해 바흐 앨범을 발매한 후 12년 만에 데카 레이블을 통해 발매하는 이번 바흐 앨범은 파리의 노트르담 드 봉스쿠르 성당에서 녹음했다.

양성원은 "소리가 풍부하고 좋은 성당"이라면서 "이번 앨범에서 추구하고자 한 것은 그날 그 장소에서 제 첼로 소리를 고스란히 담는 것"이라고 떠올렸다.

"이번 앨범에는 믹싱(소리를 추후 다듬는 작업)이라는 건 눈곱만큼도 없어요. 성당에서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 바깥에서 튕겨져 들어오는 소리. 그건 소음이 아닌 당시 연주에 스며든 소리였죠."

데카를 산하에 둔 유니버설뮤직의 이용식 이사는 "양성원 교수의 숨소리, 활을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어갔는데 그런 소리들이 연주 이상의 감흥을 준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이 명작이라고 평가 받는 또 다른 이유는 '3g의 매직'이라는 비법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나 드보르작, 슈만 협주곡에 사용되는 활과 바흐나 초기 베토벤 작품을 연주하는 활은 약 3g정도 차이가 난다. 보통 연주되는 첼로 활의 무게는 80g인데 후자는 76~77g이 되는 셈이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티끌 같은 3g의 차이는 첼로의 세계는 무한한 우주로 확장된다. 나무가 얇아지게 되면 힘이 덜 실리지만 더 정교해지고 유연해진 연주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정확한 음색,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경우에는 바흐의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

"3~4g의 차이가 가장 도드라지는 지점은 활의 텐션에 있어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너무 강한 것만 추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음악적인 또는 전문적인 의식이 아닌 긴장감이 풀리고 조이는 코드와 연결이 잘 돼야죠. 그건 가슴에서 찡했다가 풀리는 것과 연결이 되요. 활의 느낌은 결국 팔의 느낌이랑 연결되는데 1g의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다르죠.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몸이 느끼는 예민한 감각이라는 것이 위대한 이유죠."

'첼리스트의 구약성서'로 통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가 쾨텐의 레오폴트 대공 궁정에서 악장으로 일하던 1712~1723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이탈리아, 안달루시아, 프랑스 등에서 온 춤곡들로 구성됐다. 당대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오랜 세월 연습곡으로 여겨지며 평가 절하된 작품이다.

1889년 전설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우연히 악보를 발견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첼로를 위한 작품 중 성서와 같은 존재로 남았다.

양성원은 이 모음곡에 대해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혁명과 사회 변화를 이겨내 아직까지 사랑을 받는 곡이라는 것은 '불멸의 명곡'이 아닐까"라는 판단이다.

양성원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홍보대사와도 같다. 2013년 '바흐 모음곡 탐구'라는 교육용 영상을 내놓기도 했다.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교육 차원에서 작업을 한 것인데 제게도 큰 계기가 됐고 많은 변화를 줬죠. 제가 교육자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건 화성 골격, 즉 화성법을 분석을 해서 어떻게 악보를 이해해야 하고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요. 프로페셔널은 물론 학생, 아마추어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숙제였는데, 그 때 연주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서 급격히 변했어요."

첼로를 시작한 지 어느덧 4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연습 방법을 새로 터득하게 된다는 양성원은 "매년 노하우가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습하는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어요. 점점 다양하게 들려오는 음색을 찾는 과정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거든요. 그 과정에서 제 세상이 조금 더 깊어지고 발전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악기 연주는 제 자신과 싸움에서 무한한 성장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축복이에요. 그렇게 깊어지는 가운데 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한편 양성원은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전국 투어를 돈다. 내달 10일 부산 영화의 전당을 시작으로 같은 달 23일 인천 엘림아트센터, 28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10월1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이 피날레다. 약 3시간 동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는 강행군이다. 9월 15~17일 프랑스 샤토 쇼몽, 같은 달 19일 이번 앨범을 녹음한 곳인 노트르담 드 봉스쿠르 성당에서도 공연한다. 10월 7일과 19일에는 교토 라쿠요 교회와 도쿄 하주쿠 홀 무대에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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