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백서' 참여 연출가 김재엽 "권력이 공공성 좌우할 수 있다는 건 착각"

입력 : 2017.05.22 09:43
김재엽
김재엽
"예술가 내부에서도 정치권력에 줄을 대려는 사람이 있어요. 공공성을 사유화하려는 거죠. 권력을 쥐면 공공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에요. 국가의 돈이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이죠. 박근혜·최순실 사태 역시 마찬가지죠. 공과 사를 구별 못한 거예요."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대표인 연극 연출가 겸 극작가 김재엽(44·세종대 교수)은 "내셔널(국가)과 퍼블릭(공공)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과 싸움이 있어야 선진화를 넘어설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연출은 '박근혜 정부' 검열에 맞선 데 이어 남겨진 과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연극인들 중 한명이다. 대학로의 젊은 연극인들이 검열에 맞서 펼친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의 개막작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명단을 모은 '검열백서'(2018년 1월 발간 예정)를 제작하는 검열백서위원회의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각종 검열 관련 토론회에도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연출은 "연극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예술"이라며 "관객들이 와야 하니까 최소한의 공동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해요. 공공극장에서 동시대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발점으로 알려진 극단 골목길 박근형(54) 연출의 연극 '개구리' 옆에는 김 연출의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가 있었다.

2013년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그해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을 휩쓸었다.

객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적인 연극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 연출이 자신의 아버지와 한국의 상징적 아버지로 자리매김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삶을 겹쳐놓으면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냈다.

국립극단에서 '개구리'가 박근혜·박정희 전 대통령을 직설화법으로 풍자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어나면서 관심이 쏠렸지만 당시 '개구리' 공연장 건너편 무대에 올랐던 '알리바이 연대기' 공연을 둘러싼 긴장감도 팽배했다.

'개구리'와 '알리바이 연대기'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검열이 절정에 달하던 2015년 김 연출은 연구년을 맞아 1년간 독일 베를린예술대에 방문교수로 체류했다.

귀국하자마자 검열 관련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다. 선후배 동료들이 검열에 맞서는 동안 외부에서 지원사격은 했지만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김 연출이 강조하는 건 진행 중인 검열 관련 작업들이 "누구의 잘잘못을 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극장에서 검열을 막기 위해 사적으로 노력했다는 분들의 수고는 알아요. 하지만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노력을 했는지는 따져봐야 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는 월급이 아니라 국민이 주는 월급이거든요. 검열백서는 공공성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죠."

김 연출이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리는 신작 연극 '생각은 자유' 역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이다.

김 연출이 아내, 자녀와 함께 1년간 베를린에서 머물며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과정을 일종의 코멘터리 형태로 보여준다. 유학생, 재독 간호사, 현지 예술가,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전 뮌스터대학 교수 등을 만났다.

박근혜 정권을 견뎌야 했던 연극인은 그곳에서 상상력을 얻었다. 현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접한 한국 관련 뉴스는 여전히 답답했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진 그곳은 다른 시각도 틔워줬다.

이번 신작 '생각의 자유'는 독일 국민들이 자유를 위해 부른 민중가요이자 김 연출이 현지에서 내내 들을 수 있었던 'Die Gedanken sind Frei(생각은 자유)'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의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울려퍼졌던 '아침이슬'처럼 현지에서 저항, 연대 등의 의미로 계속 이어지고 불리운 곡이다.

"독일은 이주민, 난민에 대해 열려 있어요. 인종차별의 과오가 있다는, 원죄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없고 거기에 대한 경각심이 크죠.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심도 커서 국가란 말도 안 쓰죠. 그런 상황들이 한국의 현모습과 대비됐어요."

그런 부분은 연극 관람문화 형태와도 연결됐다. 시민의 학교 역할을 겸하는 독일의 극장은 대부분 공공극장이고, 그에 따른 고민을 고민하고 있다.

1년 동안 독일에서 150편의 연극을 본 김 연출은 세계적인 연출가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를 비롯한 연극 스태프와 배우, 극장 관계자들이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공연장 곳곳 또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관객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공공극장이라면 의무더라고요. 세금으로 연극을 만들고 선보이기 때문에 관객들과 그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저 역시 공공극장에서 예술적 미학은 공공성이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엘리트적인 발상으로 뛰어난 예술가라면 국가의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착각을 해요. 국가주의 습관이 내면화돼 있고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거죠."

'생각의 자유'에 이어 송두율 교수 등이 등장하는 독일 관련 후속작 2편을 추후 더 선보일 예정인 김 연출은 '알리바이 연대기' 때부터 자신을 극에 넣고 수행해온 '일기 다큐'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을 찾고 싶다고 했다.

"똑같은 형식 안에 있으면 똑같은 말이 반복되더라고요. 깊어지고 넓어지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맞는 형식을 찾아야 하는 거죠. 연극이 공동체의 예술이니 지금 현재의 문제에 대한 관심, 공공성에 대한 관심, 검열에 대한 관심은 지속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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