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목프로덕션 이샘 대표
승무원 출신, 뒤늦게 공연계 입문… 클래식 스타 22명 소속사로 키워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어요. 클래식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것밖에 안 보였거든요."
공연기획사 목프로덕션의 이샘(44·사진) 대표는 서른 넘어 일을 저질렀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으로 8년간 일하다 덜컥 사표를 냈다. 호암아트홀에서 하우스매니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클래식 애호가이셨던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회장님 덕분에 클래식을 자주 접했어요. 승무원 신입 교육을 받던 시절, 객석이 비면 공연장에 소집되는 날이 많았거든요. 동기들은 꾸벅꾸벅 조는데 저는 좋았어요. 쉬는 날에도 금호아트홀 가서 공연을 보다가 클래식에 점점 매료됐지요."
그는 면접날 '공연장 서비스'에 대한 논문을 써갔다. 결과는 합격. 나중에 물어보니 "열정 하나만큼은 남달라 보여서" 뽑혔단다. 늦깎이로 공연계에 입문한 그는 2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좋은 음악을 기획하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차렸다. 그가 2007년 세운 목프로덕션은 10년 만에 국내 주요 클래식 매니지먼트사로 자리 잡았다. 젊고 실력 있는 현악 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을 비롯해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호르니스트 김홍박, 플루티스트 김유빈,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까지. 쟁쟁한 클래식계 스타 22명이 소속돼 있다.
특히 '실내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노부스 콰르텟이 세계를 누비는 실내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이 대표의 뒷받침 덕이 크다. 2007년 결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2012년 독일 ARD 국제음악콩쿠르 2위, 2014년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콩쿠르 1위 등 여러 국제 콩쿠르를 휩쓸었다.
"공연 기획자인 내가 드러나지 않게 아티스트를 챙기자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타인에게 맞추고 양보하는 훈련을 한 덕을 보는 것 같아요. 지난 10년간 회사를 떠난 아티스트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자랑거리입니다."
그는 "완성된 연주자보다는 함께 커갈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끌린다"며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약한 부분, 예를 들어 실내악이나 지휘, 요즘은 특히 목관 연주자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했다.
목프로덕션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13일 서울 서초동 페리지홀에서 기념 공연을 연다. 노부스 콰르텟 등 소속 아티스트들의 갈라 무대가 펼쳐진다. 이 대표가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아트북스)도 곧 출간된다. 그는 "22명의 예술가가 무대에서 이루는 성취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기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