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5.08 09:55
나풀거리는 청록 빛 치마를 입은 발레리나들의 아물아물한 몸짓은 시각과 함께 청각, 심지어 후각마저 자극했다. 거대한 붓으로 굵게 찍은 검은 방점 만이 무대 배경으로 걸려 있고, 그 앞에서 향기로운 몸짓을 선보일 때 실제 난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듯했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감우), '느낀 대로 노래한다'라는 뜻의 허난설헌(1563~1589)이 시 '감우(感遇)'는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겸 단장 강수진)의 신작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작품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했다.
5~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수준 높은 초연은 이래야 한다는 걸 입증한 공연이다.
고난도의 안무가 눈에 많이 띄었지만 무엇보다 그 춤들이 단순히 기교를 뽐낸 것이 아닌, 감정을 전달하는 통로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했다. 남성중심의 가치체계가 완연하던 시기에 섬세한 감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힘겹게 펼쳐낸 허난설헌이 2017년 한국 발레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오는 30~31일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리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인 '제26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안무가'(Choreographer) 카테고리에 후보로 지명되는 등 안무가로 급부상 중인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의 55분짜리 2막 발레다. 강수진 예술감독은 이 유망주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고 전도유망한 안무가는 기대에 충분히 화답했다.
발군은 '꿈 속 광상산에서 노닐다'라는 뜻의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모티브로 삼은 2막.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역동적인 2인무가 판을 깔았다.
그리고 발레리노들이 허난설헌(수석무용수 박슬기·신승원 더블캐스팅)을 공중으로 비약시키는 등 다양한 높낮이와 동작을 취하며 몸을 통해 드라마틱한 고도(高度)의 풍경을 보여줄 때 작품은 시(詩)가 됐다.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라는 몽유광상산 속 시어가 생명력을 얻고 꿈틀댔다.
무엇보다 전통 춤 등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 내세워 '한국적인 발레' 운운하지 않는 태도가 세련됐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침향무,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의 거문고 독주 '수장(水漿)' 등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배경음악의 '농현'(弄絃)이 자연스럽게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묻어나왔다.
농현은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으로 탄성 에너지가 가득 배어 있다. 공중으로 치솟으려는 발레의 속성, 땅을 기반한 국악의 본성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빚어내며 서양과 동양의 것을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묘를 발휘했다. 난초뿐 아니라 부용꽃, 파도 등이 추상적이지 않게, 무용수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된 이유다.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화두로 삼지 않고도, 여전히 약자인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도 높게 살 만하다.
허난설헌은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와 자신을 평생 외롭게 한 남편, 몰락하는 친정, 일찍 떠나보낸 두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점차 쇠약해지다 시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인물이다.
강효형을 비롯해 강수진 예술감독, 정윤민 디자이너, 무대에 박연주 디자이너 등 여성 예술가들이 그 고민에 공감하고 숙고했음이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허난설헌을 번갈아 연기한 두 주역 무용수인 박슬기와 신승원은 각각 애절함과 단호함으로 허난설헌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개막 전날인 4일 오후 7시 본 공연과 같은 최종 리허설이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댓글에는 "무용 잘 모르는데 울면서 봤어요 연기도 좋고 곡도 참 좋네요"(아이디 꽃피는 ****)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제목의 '수월경화'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라는 뜻이다. 눈에는 보이나 손으로는 잡을 수 없음을 뜻한다. 시적인 정취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함을 뜻하는데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추상적일 수 있는 내용과 정서로 객석의 감정을 현실감 있게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감우), '느낀 대로 노래한다'라는 뜻의 허난설헌(1563~1589)이 시 '감우(感遇)'는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겸 단장 강수진)의 신작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작품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했다.
5~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수준 높은 초연은 이래야 한다는 걸 입증한 공연이다.
고난도의 안무가 눈에 많이 띄었지만 무엇보다 그 춤들이 단순히 기교를 뽐낸 것이 아닌, 감정을 전달하는 통로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했다. 남성중심의 가치체계가 완연하던 시기에 섬세한 감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힘겹게 펼쳐낸 허난설헌이 2017년 한국 발레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오는 30~31일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리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인 '제26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안무가'(Choreographer) 카테고리에 후보로 지명되는 등 안무가로 급부상 중인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의 55분짜리 2막 발레다. 강수진 예술감독은 이 유망주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고 전도유망한 안무가는 기대에 충분히 화답했다.
발군은 '꿈 속 광상산에서 노닐다'라는 뜻의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모티브로 삼은 2막.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역동적인 2인무가 판을 깔았다.
그리고 발레리노들이 허난설헌(수석무용수 박슬기·신승원 더블캐스팅)을 공중으로 비약시키는 등 다양한 높낮이와 동작을 취하며 몸을 통해 드라마틱한 고도(高度)의 풍경을 보여줄 때 작품은 시(詩)가 됐다.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라는 몽유광상산 속 시어가 생명력을 얻고 꿈틀댔다.
무엇보다 전통 춤 등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 내세워 '한국적인 발레' 운운하지 않는 태도가 세련됐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침향무,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의 거문고 독주 '수장(水漿)' 등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배경음악의 '농현'(弄絃)이 자연스럽게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묻어나왔다.
농현은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으로 탄성 에너지가 가득 배어 있다. 공중으로 치솟으려는 발레의 속성, 땅을 기반한 국악의 본성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빚어내며 서양과 동양의 것을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묘를 발휘했다. 난초뿐 아니라 부용꽃, 파도 등이 추상적이지 않게, 무용수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된 이유다.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화두로 삼지 않고도, 여전히 약자인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도 높게 살 만하다.
허난설헌은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와 자신을 평생 외롭게 한 남편, 몰락하는 친정, 일찍 떠나보낸 두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점차 쇠약해지다 시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인물이다.
강효형을 비롯해 강수진 예술감독, 정윤민 디자이너, 무대에 박연주 디자이너 등 여성 예술가들이 그 고민에 공감하고 숙고했음이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허난설헌을 번갈아 연기한 두 주역 무용수인 박슬기와 신승원은 각각 애절함과 단호함으로 허난설헌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개막 전날인 4일 오후 7시 본 공연과 같은 최종 리허설이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댓글에는 "무용 잘 모르는데 울면서 봤어요 연기도 좋고 곡도 참 좋네요"(아이디 꽃피는 ****)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제목의 '수월경화'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라는 뜻이다. 눈에는 보이나 손으로는 잡을 수 없음을 뜻한다. 시적인 정취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함을 뜻하는데 '허난설헌 - 수월경화'는 추상적일 수 있는 내용과 정서로 객석의 감정을 현실감 있게 포착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