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이 뉴스] 천경자 이름 빠진 '미인도'

입력 : 2017.04.19 03:01

-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미인도'
26년만에 眞僞 논란 경과도 전시
작가명 없어… "판단은 관객 몫"

위작(僞作) 논란이 불거진 지 26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반에 공개하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작가 이름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막 하루 전인 18일, 언론에 공개된 미인도는 작가명·제작 연대·제작 기법 등을 표기하는 이름표 없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4전시실에 걸렸다. 미인도는 '균열: 소장품 특별전'(2018년 4월 29일까지)에 나오는 100여 점 작품 중 하나다.

작가명 없는 '미인도'의 등장으로 기자회견장엔 소동이 일었다. "천경자를 명시하지 않은 건 진품이라는 확신이 없어서인가" "여전히 위작이라 주장하는 유족과의 저작권법 소송을 피해가려는 것인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우리는 미인도가 진품이라 믿고 있고 검찰이 내린 진품 판단을 존중한다"며 "작가명을 표기하지 않은 건 미술관이 더 이상 진위 여부를 언급하지 않고 국민들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1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4전시실에 내걸린 천경자의‘미인도’. 천 화백 단골 표구상이었던 동산방화랑이 제작한 원래 액자에 담겨 전시됐지만, 그림 옆에 작가명을 비롯한 이름표는 부착하지 않았다. /이태경 기자
1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4전시실에 내걸린 천경자의‘미인도’. 천 화백 단골 표구상이었던 동산방화랑이 제작한 원래 액자에 담겨 전시됐지만, 그림 옆에 작가명을 비롯한 이름표는 부착하지 않았다. /이태경 기자
미술관은 미인도 공개 전날까지 작가명 표기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공개 하루 전만 해도 '작가 미상'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저작권법 위반은 피해갈 수 있으나 미인도를 진품이라 주장해온 미술관 입장을 번복하는 셈이 된다는 의견이 나오자 '이름표 없는 전시'를 결정했다.

대신 전시 공간을 그간의 진위 논란 경과를 보여주는 아카이브(자료관)로 구성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환수된 미인도가 재무부, 문공부를 거쳐 미술관으로 이관되는 절차를 보여주는 문서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기록대장과 카드 등을 실물로 전시한다. 위작 논란이 일기 전인 90년 8월 미술관 직원이 천 화백에게 가서 받아온 미인도 복제품 발간 승인서도 공개했다.

문제는 전시를 보고 나면 머리가 더욱 갸우뚱해진다는 점이다. 미술관 자료와 함께 유족 측 반박 내용도 나열한 탓이다. 미인도 오른쪽 벽에 적은 천경자의 소회는 결정적이다. '모든 게 하여튼 막 봐서 엉성한 그림이에요. 눈에도 힘이 없고요. 대개 제가 코 같은데 (그릴 때는) 코 여기가 사실적으로 보면 높으잖아요? 그런데 코 여기도 벙벙하게 돼 있고…."

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가 작품의 정통성(오리지널리티)을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작가명 삭제, 주장과 반론이 어정쩡하게 뒤섞인 전시 형태, 게다가 판단은 관람객이 하라는 미술관 측 태도가 오히려 공개 전시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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