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06 09:40

4월의 통영은 도시 전체가 악보 자체다. 크고 작은 섬이 2분 음표 또는 4분 음표가 돼 통영국제음악당 앞바다를 오선지 삼아 노래한다.
만개한 벚꽃나무의 흩날리는 꽃잎들은 무수한 페르마타가 돼 행인들이 흥얼거리는 노래, 또는 경쾌한 발걸음에 멜로디와 리듬의 표정을 부여한다.
소년 윤이상(1917~1995)의 음악적 영감이 만개했을 만하다. 미세먼지 영향이 덜한 4일 오후 '2017 통영국제음악제'가 진행 중인 통영은 문서노동자의 노트북 키보드마저 피아노의 건반으로 탈바꿈시켰다.
'제2의 윤이상'으로 통하며 유럽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재독작곡가 박영희(72)는 전날 처음 통영에 왔는데 "이런 곳이라면 윤이상 선생님이 충분히 음악적 영감을 받았을 만하다"고 감탄했다. 이날 찾은 윤이상기념관은 종종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자그마한 윤이상 기념공원 내 오도카니 자리하고 있다.
교복을 입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는 여고생들과 등산복을 입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중장년 여성들 사이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인해 윤이상은 통영에서 일상이 된 듯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의 음악적 혼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2000년 통영문화재단과 국제윤이상협회가 함께 주최한 통영현대음악제가 모태로,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재단 위주로 재편됐다.
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라 더 공을 들였다. 지난달 31일 개막공연에서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테트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달 1~2일 세계 최정상 악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된 '빈 필하모닉 앙상블', 지난 1일과 5일에는 윤이상 작품에 통달한 연주자들의 단체인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이 윤이상의 곡을 연주했다.
4일 통영국제음악단에서는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의 지휘로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8중주'(옥텟·Octet)를 들려줬다. 서양악기 속에서 해금, 대금 소리가 울려퍼졌고 난해했지만 귓가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최수열 지휘자는 "어렵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곡"이라고 했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의 폐막공연은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이끄는 서울시향이 맡는데,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이번 음악제가 끝나도 그를 조명하는 일이 이어진다. 밍게트 콰르텟(5월14일)이 윤이상의 현악사중주 6번,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8월 26일)가 윤이상의 무악과 예악,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10월13일)가 윤이상의 활주, 소프라노 조수미와 기타리스트 슈페이양(10월 28일)은 윤이상의 가곡을 선보인다.
그 가운데 윤이상의 탄생일(9월17일)에는 윤이상과 절친했던 거장 지휘자 하인츠 홀리거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가 실내악 무대를 꾸민다.
같은 달 22일에는 홀리거 지휘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나선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클라라 주미 강은 이후 그달 25일부터 1주일 간 유럽을 돌며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하모니아' 등을 선보인다.
통영 밖에서도 윤이상의 음악은 울려퍼진다. 서울시향은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2017 교향악축제'에서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의 지휘로 윤이상의 서곡을 들려준다.
5월17일 경기 구리아트홀에서 펼쳐지는 '경기 실내악 페스티벌' 역시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 '윤이상의 음악 세계'를 펼친다.
공공연하게 윤이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온 첼리스트 고봉인은 9월22일 금호아트홀에서 헌정 무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하지만 '상처 입은 용'이라는 수식에서 보듯, 윤이상은 위대한 작곡가였지만 삶은 굴곡으로 점철됐다. 특히 그는 '원조 블랙리스트'로 통한다.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수감됐다 동료 예술가들의 탄원 등에 힘입어 풀려났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후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은 1995년 베를린에서 영면할 때까지 그리워하던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지난한 삶은 세상을 뜬 이후에도 여전했다. 2003년 출발한 한국의 첫 국제 콩쿠르인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홀대를 받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윤이상평화재단은 2013년 이후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유럽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의 업적을 잇달아 기리고 있는데, 정작 고국에서는 홀대 받았다. 다행히 올해 11월 콩쿠르를 이어갈 수 있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2017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 사업 결과' 등을 통해 확보하면서 고인의 명예를 고국에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산이 대폭 줄면서 애초 오는 6일 예정됐던 대작 오페라 '심청'이 다소 규모가 작은 오페라 '류퉁의 꿈'으로 대체되는 등 고인에 대한 위상과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가 박선욱씨가 펴낸 '윤이상 평전' 마지막 부분에는 "그는 조국으로부터 배척당한 유배자가 돼 고립됐지만 그는 더욱더 다원주의적인 세계인으로서 생의 지평을 넓혀갔다. 그는 이 역설을 딛고 불멸의 예술혼을 길어올렸다"고 썼다.
박영희 작곡가는 "윤이상 선생님의 소리 자체는 유럽에서도 새로웠어요"라며 "음악이 주는 힘이라고 할까요, 그 열정이 새로운 경향의 미학을 가진 음향이었죠. 지금까지 없던 작품을 태어나게끔 만드신 분이니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이상과 박영희의 뒤를 이어 유럽에서 활약 중인 작곡가인 진은숙 서울시향 공연기획 자문역은 "윤이상 선생님은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음악가인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정말 척박한 상황에서 태어나, 힘든 가운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그 분의 능력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분의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강조하는 건 저뿐만 아니라 제 밑에 세대 작곡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작곡가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행사는 9일까지.
만개한 벚꽃나무의 흩날리는 꽃잎들은 무수한 페르마타가 돼 행인들이 흥얼거리는 노래, 또는 경쾌한 발걸음에 멜로디와 리듬의 표정을 부여한다.
소년 윤이상(1917~1995)의 음악적 영감이 만개했을 만하다. 미세먼지 영향이 덜한 4일 오후 '2017 통영국제음악제'가 진행 중인 통영은 문서노동자의 노트북 키보드마저 피아노의 건반으로 탈바꿈시켰다.
'제2의 윤이상'으로 통하며 유럽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재독작곡가 박영희(72)는 전날 처음 통영에 왔는데 "이런 곳이라면 윤이상 선생님이 충분히 음악적 영감을 받았을 만하다"고 감탄했다. 이날 찾은 윤이상기념관은 종종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자그마한 윤이상 기념공원 내 오도카니 자리하고 있다.
교복을 입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는 여고생들과 등산복을 입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중장년 여성들 사이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인해 윤이상은 통영에서 일상이 된 듯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의 음악적 혼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2000년 통영문화재단과 국제윤이상협회가 함께 주최한 통영현대음악제가 모태로,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재단 위주로 재편됐다.
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라 더 공을 들였다. 지난달 31일 개막공연에서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테트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달 1~2일 세계 최정상 악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된 '빈 필하모닉 앙상블', 지난 1일과 5일에는 윤이상 작품에 통달한 연주자들의 단체인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이 윤이상의 곡을 연주했다.
4일 통영국제음악단에서는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의 지휘로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8중주'(옥텟·Octet)를 들려줬다. 서양악기 속에서 해금, 대금 소리가 울려퍼졌고 난해했지만 귓가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최수열 지휘자는 "어렵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곡"이라고 했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의 폐막공연은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이끄는 서울시향이 맡는데,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이번 음악제가 끝나도 그를 조명하는 일이 이어진다. 밍게트 콰르텟(5월14일)이 윤이상의 현악사중주 6번,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8월 26일)가 윤이상의 무악과 예악,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10월13일)가 윤이상의 활주, 소프라노 조수미와 기타리스트 슈페이양(10월 28일)은 윤이상의 가곡을 선보인다.
그 가운데 윤이상의 탄생일(9월17일)에는 윤이상과 절친했던 거장 지휘자 하인츠 홀리거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가 실내악 무대를 꾸민다.
같은 달 22일에는 홀리거 지휘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나선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클라라 주미 강은 이후 그달 25일부터 1주일 간 유럽을 돌며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하모니아' 등을 선보인다.
통영 밖에서도 윤이상의 음악은 울려퍼진다. 서울시향은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2017 교향악축제'에서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의 지휘로 윤이상의 서곡을 들려준다.
5월17일 경기 구리아트홀에서 펼쳐지는 '경기 실내악 페스티벌' 역시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 '윤이상의 음악 세계'를 펼친다.
공공연하게 윤이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온 첼리스트 고봉인은 9월22일 금호아트홀에서 헌정 무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하지만 '상처 입은 용'이라는 수식에서 보듯, 윤이상은 위대한 작곡가였지만 삶은 굴곡으로 점철됐다. 특히 그는 '원조 블랙리스트'로 통한다.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수감됐다 동료 예술가들의 탄원 등에 힘입어 풀려났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후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은 1995년 베를린에서 영면할 때까지 그리워하던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지난한 삶은 세상을 뜬 이후에도 여전했다. 2003년 출발한 한국의 첫 국제 콩쿠르인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홀대를 받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윤이상평화재단은 2013년 이후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유럽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의 업적을 잇달아 기리고 있는데, 정작 고국에서는 홀대 받았다. 다행히 올해 11월 콩쿠르를 이어갈 수 있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2017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 사업 결과' 등을 통해 확보하면서 고인의 명예를 고국에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산이 대폭 줄면서 애초 오는 6일 예정됐던 대작 오페라 '심청'이 다소 규모가 작은 오페라 '류퉁의 꿈'으로 대체되는 등 고인에 대한 위상과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가 박선욱씨가 펴낸 '윤이상 평전' 마지막 부분에는 "그는 조국으로부터 배척당한 유배자가 돼 고립됐지만 그는 더욱더 다원주의적인 세계인으로서 생의 지평을 넓혀갔다. 그는 이 역설을 딛고 불멸의 예술혼을 길어올렸다"고 썼다.
박영희 작곡가는 "윤이상 선생님의 소리 자체는 유럽에서도 새로웠어요"라며 "음악이 주는 힘이라고 할까요, 그 열정이 새로운 경향의 미학을 가진 음향이었죠. 지금까지 없던 작품을 태어나게끔 만드신 분이니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이상과 박영희의 뒤를 이어 유럽에서 활약 중인 작곡가인 진은숙 서울시향 공연기획 자문역은 "윤이상 선생님은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음악가인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정말 척박한 상황에서 태어나, 힘든 가운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그 분의 능력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분의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강조하는 건 저뿐만 아니라 제 밑에 세대 작곡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작곡가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행사는 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