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봐서 아쉽고 또 보고픈 공연, 영상으로 제작 붐

입력 : 2017.03.20 09:51
발레 '심청'
발레 '심청'
■예당 '싹 온 스크린'·국립극장 'NT 라이브' 활기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심청'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황혜민이 아버지 심봉사와 헤어지는 장면을 연기할 때, 그처럼 오열의 강도가 짙은지 몰랐다.

16일 오후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지켜본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 영상화사업(SAC on Screen·싹 온 스크린)의 '심청'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파고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살려냈다.

'심청'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 높게 평가 받는 작품이다. 몸짓으로 전하는 '몸의 언어' 만으로도 이미 완결성을 갖췄다. 하지만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 무용수들의 세세한 표정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싹 온 스크린'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멀찌감치 떨어진 객석까지 그 표정의 여운을 전달한다.

3차원의 무대를 2차원의 스크린으로 옮긴, 즉 공연 영상화 작품을 상영하는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대표적인 건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NT라이브다. 내셔널 시어터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의 약칭인 NT 라이브는 영국 국립극장이 연극계 화제작을 촬영해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생중계 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014년 3월 국립극장이 국내 최초로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매번 매진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누렸는데, 2015년 상영시 객석점유율 100%를 기록한 '프랑켄슈타인'과 이번에 처음 선보인 '제인 에어' 역시 지난달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프랑켄슈타인'은 두 주역 베니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의 꿈틀대는 근육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 '제인에어'는 보수적인 사회 속 여성의 놀라운 성장담의 정서를 스크린으로 전달하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대표 김진선)가 '꿈의 무대'로 통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상영하는 '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이브 온 스크린 인 시네마스' 역시 인기다. HD보다 또렷한 화질을 구사하는 4K디지털 프로젝터로 성악가의 표정은 물론 땀방울까지 포착한다.

특히 뉴욕 현지 화제작을 오랜 공백기 없이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지난해 12월 공연한 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상영 중이다. 핀란드 출신의 여류 현대음악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의 첫 오페라 작품으로 '무대의 마법사'로 불리는 로베르 르파주가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다양한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는 LED를 피아노 줄을 연상시키는 배열로, 바다 풍광을 만들어 내고 그 위를 배가 떠다니게 만든 연출이 영상을 통해 선명하게 전해진다.

르파주는 지난 2015년 내한공연한 '바늘과 아편'에서 보듯 기술을 몽환적이고 시(詩)적으로 무대 위에 구현하는 솜씨가 일품이니, 그의 3차원작인 무대 언어가 2차원적인 영상언어로 치환돼도 무리가 없다.

예술의전당 '싹온스크린'은 이 '메트 온 스크린'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카메라는 일반 청중이 접할 기회가 없는 무대 깊숙한 곳은 물론, 백스테이지 풍경 ,주역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도 곁들여진다.

'메트 온 스크린'은 소니 클래시컬 레코드 대표였던 피터 겔브가 2006년 메트 오페라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했다. 대중과 소통을 꾀하는 동시에 결국 오페라 관객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으로 수익창출도 노린다. '메트 온 스크린'은 후원자를 모집한다는 홍보도 한다.

무대 위 날 것의 매력은 덜하지만 티켓 한장당 수십만원에 달하는 공연을 3만원에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호사다. 국립극장 NT라이브 역시 보통 영화 상영관 최고가와 비슷한 1만5000원이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심청'을 비롯해 연극 '보물섬' 등을 특별상영한 예술의전당 '싹온스크린'은 무료다.

2013년 11월 16일 서울 CGV와 경기 등 지역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토요콘서트'의 실황중계 상영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기준 국내외 108곳 상영처에서 9만1937명이 관람했다.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국내 스태프를 동원해 공연영상을 제작하고 전국에 무료 상영한다. 지난해에는 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상영회를 갖기도 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등의 영상화를 추진한다.

연극, 클래식음악뿐 아니라 뮤지컬 등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을 영상으로 옮기는 시도는 이밖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영화사 숨은 연극 공연과 영화의 협업 'DnC 라이브(Live)'를 2015년 론칭, 이윤택 연출의 연극 '혜경궁 홍씨'를 스크린에 옮기기도 했다.

공연의 영상화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는 건 경제 침체 등으로 공연까지 악영향을 받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나온 방안 중 하나다. 관객층을 넓혀, 궁극적으로 관객들을 무대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다만 공연시장의 저변이 넓지 않고, 산업화가 덜 된 한국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술의전당의 싹온스크린이 무료로 진행되는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공연계 관계자는 "공연 영상화는 기술의 발전이 공연의 대중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NT라이브와 메트오페라처럼 인기 있는 공연장의 공연을 다른 나라에서 쉽게 접하며 수익 창출을 꾀하는 방향과 한국처럼 문화소외 지역을 찾은 작업이 병행되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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