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공연? 적어도 3년 더 할겁니다"

입력 : 2017.03.03 00:35

[내일 서울 무대 서는 호세 카레라스]

성악가 꿈꾸며 듣던 노래 불러
"3년 전 서울 공연 무산 아쉬워… 은퇴해도 자선콘서트는 계속"

"아직 가보지 못한 무대가 많아 적어도 3년은 이 투어를 이어갈 거예요.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일흔한 살 호세 카레라스는 끝내 '이번이 마지막 무대'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도밍고가 그러더군요. '신께서 내게 노래할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를 남겨주는 한 나는 계속 노래할 것이다'. 그 대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루치아노 파바로티(작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더불어 '스리 테너' 원조(元祖)로 시대를 풍미한 카레라스가 서울에 왔다. 지난해 2월 영국 로열 앨버트 홀에서 시작한 월드투어 '음악과 함께한 인생'의 서울 공연(4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위해서다. 카레라스는 2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 모래빛 재킷에 흰 체크 셔츠를 받쳐 입고 나타났다. 도밍고가 쾌활하고 배짱 좋은 소설가 풍모라면 카레라스는 내면에 골몰하는 시인에 가까웠다.

고향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구 클럽 FC바르셀로나의‘빅 팬’을 자처한 호세 카레라스는“카탈루냐 사람들이 그 팀을 후원하는 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과 뿌리, 언어를 찾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고향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구 클럽 FC바르셀로나의‘빅 팬’을 자처한 호세 카레라스는“카탈루냐 사람들이 그 팀을 후원하는 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과 뿌리, 언어를 찾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스물넷에 유명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의 상대역으로 데뷔, 잘생긴 외모와 서정적인 목소리로 일약 스타가 된 카레라스는 데뷔 4년 만에 24개 작품을 소화하며 승승장구했다. 197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선 베르디 '레퀴엠'으로 카라얀의 극찬을 들었다. 그러나 1987년 오페라 영화 '라 보엠' 촬영 중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생존율이 10%였다. 미국 시애틀에서 치료에 전념하던 그에게 무려 10만여 통의 편지가 세계에서 날아들었다. 파바로티는 '당신이 없으면 나는 누구와 경쟁한단 말이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도밍고는 직접 시애틀로 가 그를 위로했다. 1988년 수척해진 모습으로 고국 오페라 무대에 복귀해 공연을 마쳤을 때 카탈루냐 시민 15만명은 그를 목말 태워 가두행진을 했다.

빈 국립오페라 데뷔 30주년(2004년)에는 비제 오페라 '카르멘'과 에르마노 볼프 페라리의 오페라 '슬라이'로 갈라 콘서트를 꾸몄다. 2013년 이 극장에 다시 돌아온 카레라스는 공연 후 명예 메달을 받았고 관객들은 40분간 기립 환호했다. 오스트리아 우편국은 그의 업적을 기려 '호세 카레라스 우표'를 발행했다. "어떻게 잊겠어요, 제 삶에서 가장 빛났고 또 가장 어두웠던 그때를. 나는 정말 운 좋은 사람이에요!"

이번 공연에서 카레라스는 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와 사티의 '당신을 원해요', 발렌테의 '열정' 등 성악가를 꿈꿀 때 즐겨 듣던 노래와 스리 테너로 활동할 당시 히트한 곡들을 부른다. "모든 노래가 제겐 역사적인 기억을 품고 다가와요. 그 노래를 부를 때 함께했던 사람들, 누볐던 무대, 객석을 감쌌던 공기와 빛, 냄새까지. '그대를 사랑해'는 고향 카탈루냐어로 부르기 때문에 표현의 깊이가 다를 겁니다."

3년 전 후두염에 걸려 내한 이틀째 공연을 취소한 적 있는 카레라스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진짜 마지막이 아닌지'를 거듭 묻는 질문엔 혼잣말처럼 '라스트'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언젠간 그날이 오겠죠. 때 되면 가는 게 인생 법칙이니까. 하지만 은퇴하더라도 내 이름을 딴 '호세 카레라스 국제 백혈병 재단'을 위한 자선 콘서트에 매진할 겁니다. 절 보며 환호하는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행복한 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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