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화 데뷔 20주년 '조광화展']
가부장제 비판·동성애·폭력… 비극적 세상의 민낯 무대로 올려
대표작 '남자충동' 再演 연일 매진 "연극은 내 삶 지탱하는 원동력"
50년 이상 연극계를 호령한 '대선배'들에 비하면 이제 갓 50세를 넘긴 연출가에게 '전(展)'이란 이름을 붙여가며 열광하는 건 드문 일. 구소영 음악감독이 연출한 '기념 콘서트'엔 그의 대표작인 '남자충동'을 비롯해 '베르테르' '서편제' '내 마음의 풍금' 등에 출연했던 배우·스태프들이 모여 조광화를 칭송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남자충동'처럼 동성애나 여장 남자, 아버지에 대한 폭력적인 반발 등 금기시된 소재에 정면으로 달려드는 조광화는 전통적인 무대 연출을 고수하면서도 내용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추구해 관습과 비관습을 조화시켜나가는 연출가"라고 평했다.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조광화는 "함께해준 동료, 선·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무대에 작품을 올리고 나면 마치 딸아이를 시집보낸 것처럼 애틋하다"며 웃었다. "어린 시절 외로움에 마냥 허무해하던 아이였어요. 그러다 중학생 때인가? 희곡을 낭독하는데 갑자기 무언가 끓어오르는 거예요. 정수리에서부터 뜨거운 쇳물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랄까. 친구들 에너지가 모두 제게 모이는 듯했죠." 그 '뜨거움'을 다시 만난 건 대학 시절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면서다. "이런 게 살아있다는 거구나. 이게 내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겠다 싶었죠."
'됴화만발' '미친 키스' 등 그의 작품엔 광기 서린 열정,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으로 가득하다. "영화가 판타지라면 연극은 치열하고 어쩌면 눈뜨고 보기 힘든 비극적 세상의 민낯을 처참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판타지에 기대어 잠깐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을 이끄는 진짜 힘은 연극처럼 삶을 직시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충동'에서처럼 가부장제의 잘못된 맹신에 대한 비판도 예리하다. 20년 전보다 '강간' 등 '여혐'을 불러일으킬 대사는 대폭 삭제됐지만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는 이에 대한 조롱은 여전하다. "가부장제가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더 큰 사회적 가부장제에 놓인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뭔가 뺏긴 거 같은 마음에 답답해하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게 아닌데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소유하고자 하는 '가짜 욕망'에 골병들어 가고요. 우리 사회에 진짜 어른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진정한 '어른'이 이끄는 가부장제는 비판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미국 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죠. 나중에 그런 사람을 그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대중이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고요. 어른들이 분명 사회에 존재하는데도 '참견질'이라고 삿대질하니 자꾸 숨어버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