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4 18:03
제1회 뮤지컬어워드서 남우주연상 받은 '영웅' 안중근役 정성화
개그맨 출신이라는 '딱지' 뮤지컬 배우 할 수 있는 원천
잘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 뮤지컬 배우로 노력할수 있었다
정성화(42)에게 '개그맨 출신', 그것도 '잘 안 풀린 개그맨' 출신이란 편견을 갖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2004년부터 주인공을 꿰찼고 한국뮤지컬대상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6번 받은 14년 차 뮤지컬 배우이지만 대중에게 그는 여전히 그런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영웅' 막이 오르며 등장한 그는 한물간 개그맨이 아니었다. 3000여 객석을 압도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마치 호랑이의 포효 같았다. 그가 정말 안중근처럼 보였다. 공연이 끝날 때쯤 객석은 눈물 훔치고 콧물 훌쩍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분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9년 뮤지컬 '영웅' 초연부터 3년간 안중근 역할을 맡은 후 오랜만에 '영웅' 주인공으로 돌아온 그였다. 지난달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드에서 남자주연상도 하나 더 거머쥐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대 뒤에서도 여전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노랫가락 같은 그의 목소리가 분장실을 울렸다.
개그맨 출신이라는 꼬리표
―한물간 개그맨으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개그맨을 개그맨으로 본 게 무슨 오해인가요.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개그맨으로 TV에 출연하면서 월급도 받았어요. 웃기지 못한 개그맨이라 좀 그렇지만요(웃음). 수도권을 벗어나면 전 여전히 잘 못 나가는 개그맨에 불과해요. '요즘 뭐해? 밥은 먹고 다녀? TV 좀 나와' 하시는 분들을 하나하나 쫓아다니며 '저 뮤지컬 하는 거 모르세요? 상도 여러 개 받았어요. 밥 먹고 살 만큼 돈도 잘 벌고 있단 말이에요'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개그맨 출신이라는 딱지가 싫지 않은가 봐요.
"관객들을 대할 때 개그맨 출신이 이득인 경우가 훨씬 많아요. '개그맨인데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 하고 코웃음쳤다가 '개그맨인데 이렇게 잘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거든요. 개그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잘 못 웃기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해 개그맨 신동엽, 이휘재, 이영자 등 걸출한 개그 스타들을 배출한 개그 동아리 '개그클럽' 회장도 맡았다. 꿈꾸던 개그맨 데뷔도 동기 중 최연소로 하게 됐다. 인생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듯했다.
―개그맨이란 꿈을 금방 이뤘죠?
"시험 한 번 만에 공채 시험에 합격했어요. '아, 사람들이 역시 나를 알아주는구나' 했죠. 인생 3대 악재라고 꼽는 것들이 있잖아요. 초년 출세, 중년 사별, 노년 빈곤. 그중에 전 초년 출세였던 거예요. 원래 이렇게 쉽게 되는 거구나 싶었어요. 불과 몇 달 지났을 뿐인데 예고 없는 추락이 시작되더라고요. 뭘 해도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슬럼프가 시작된 게 그쯤인가요?
"연기력 밑천이 드러난 거죠. 선배들이 대본 던져주면 이게 연기인지 뭔지 생각도 없이 있다가 무대 위에 올려주면 외운 대사를 읊는 수준이었죠. 그날 반응이 안 좋았으면 '왜 그랬을까' 분석을 해야 하는데 실실 웃어넘겨 버리고 선배들이 사주는 소주나 얻어 마시고요. 연극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 끝나고 바로 데뷔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배운 연기 지식도 거의 없었어요. 개그, 크게 보면 연기에 대한 철학이 전혀 없었던 거죠."
"넌 뭘 해도 중간 이하"
―좌절했겠어요.
"PD 한 분이 술자리에서 그러는 거예요. '성화는 뭘 시켜도 중간이거나 아니면 그 약간 밑이라 쓰기가 애매해.' 열 받지만 그게 맞는 말인 거예요. 가슴을 확 찌르더라고요. 사람들을 빵 터뜨린 적도 없었고 선배들한테는 못 웃긴다고 매일 혼났으니까요. 나한테도 뭘 시켜줘야 반등의 기회가 생기고 나도 뜨고 중간 이상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거 아니냐고 생각했죠."
―그래서 드라마로 눈을 돌린 건가요?
"쓴맛만 보던 저한테 기회가 찾아왔어요.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복학생 정만수 역을 맡게 됐죠. 사고뭉치 역할이었어요. 그 역할로 꽤 인기를 끌어서 CF도 찍었고 카이스트가 끝나고도 비슷한 캐릭터로 몇 작품에 더 출연도 했어요. '드디어 나도 중간 이상이거나 좀 위로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개그 쪽에 있어봤자 나한테 역할도 안 주고 만날 욕이나 먹는데 드라마 판에서 살길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몇 달 지나니까 약속이나 한 듯이 하루아침에 일이 뚝 끊겼어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아뇨,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문제였어요. 소위 연기를 들켰다고 하죠. 카이스트 정만수 캐릭터로 재탕, 삼탕뿐만 아니라 오탕, 육탕까지 해먹었으니까요. 매일 똑같은 모습, 비슷한 캐릭터, 식상한 느낌으로는 오래 못 간다는 걸 그제야 안 거죠."
중간 이하 개그맨의 반란
―뮤지컬이 세 번째 기회였나요?
"스파크라고 해야 할까요. 그 전까지 제가 받았던 박수들은 전부 '오빠 잘하세요' 같은 하이톤 여학생들의 팬심 어린 응원이었는데 뮤지컬은 달랐어요. '아이 러브 유'로 첫 공연을 하는데 중간에 관객들이 배꼽 잡고 웃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요. 그런데 그 박수는 '너 잘했다'의 박수인 거예요. 제대로 된 박수를 처음 받은 거죠. 사람들의 완전히 무장 해제된, 정성화를 위한 박수를 받고 나니까 '이게 진짜 박수라는 것이구나'를 안 거죠."
뮤지컬 '아이 러브 유'(2004년)를 시작으로 그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2007), '영웅'의 안중근(2009), '라카지'의 마담 자자(2012)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2012), '킹키부츠'의 롤라(2016) 등 주인공 역할을 줄줄이 꿰찼다. 지난 2010년을 시작으로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매년 남우주연상, 남자배우상, 대상을 휩쓸었다. 개그맨 시절엔 상상도 못 할 상들이었다.
―연습량이 엄청난 걸로 유명하던데요.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추락하지 않겠다'고 수천 번을 되뇌었어요.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았어요. 처음으로 코미디가 아닌 정통 연기를, 그것도 주인공을 하게 된 거죠. 일산에 집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연습실 앞 3분 거리에 방 하나를 단기 임차했어요. 오전 10시에 연습 시작이면 전 8시 30분쯤 갔고 오후 6시쯤 끝나면 밤 10시 넘어서까지 연습실에 남아있었어요. 제작사 측에선 산초 역할로 염두에 뒀던 것을 고집 부려 돈키호테를 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그냥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해내야 한다'는 필사의 몸부림이었죠."
―결과가 무대에서 보이던가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무대라는 공간이 참 발가벗겨지기 좋은 곳이에요. 조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나가면 '아, 뭐가 잘 안 되고 있구나' 느껴지거든요. 또 그 전까지는 무대에 오르면 조금 떨렸거든요. 그런데 연습을 물고 늘어지니까 무대가 너무 편한 거예요. 무대가 두렵지 않았어요."
칭찬 먹고 살던 배우
―얼마나 준비해야 무대에 서도 되겠다 싶은가요?
"배우마다 기준이 다 다르지만 저는 공연 전 30~40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훑어봐야 마음이 편해요. 공연 전체가 구슬처럼 꿰지거든요. 그래야 시나리오가 완전히 내 것이 되고 나가서 허둥대지 않고 연기를 하게 돼요. 요즘도 모든 연습, 모든 공연을 전부 녹음해요. 끝나면 다시 들어보고 부족한 것은 고치려고 하죠."
―'영웅'은 벌써 300회가 넘게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섰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요?
"뮤지컬은 진짜예요. 관객이 저랑 대면하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관객을 100만명 정도 만난 거 같아요. 2000만명이 절 TV로 보는 것보다 저를 직접 만난 관객의 절반이라도 그들 가슴속에 들어가는 게 진짜라는 뜻이에요."
―관객들 평가에 목매는 것이 독이 되지는 않나요?
"그래서 이젠 '욕먹지 않으려고'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려고 훈련해요. 2012년에 '레 미제라블'을 하면서 욕을 엄청나게 먹었어요. 첫 곡이 17분짜리인데 버겁더라고요. 첫 공연, 첫 곡에서 음 이탈, 일명 '삑사리'를 냈어요. 저는 키워진 뮤지컬 배우가 아니잖아요. 발성이고 연기고 한계를 느낀 거죠. 그때부터 노래와 올바른 발성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배워야 했나요?
"믿음을 갖기 위해서예요. 우리나라는 공연 홀이 아주 넓어서 무대 위에선 내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어느 순간 '소리가 잘 나고 있나? 음정이 잘 맞나?' 하는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때 그 의심을 거두고 소리가 잘 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 믿음을 갖는 것도 훈련이에요."
―그 전까진 자신을 잘 못 믿었나요?
"항상 깊숙한 곳에 불안함이 깔려있던 것 같아요. 내가 하는 게 개그인지 연기인지도, 정성화가 누군지도 몰랐던 거죠. 지금은 어렴풋이 뭘 하는지는 알고 있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조금은 파악하고 있고요."
'할아버지 배우' 되는 게 꿈
―다시 개그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잘 못할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바닥에 발붙이고 있는 많은 장인이 있잖아요. 그 틈바구니에서 제가 견딜 수가 없어요. 또 정성화를 있는 그대로 믿어준 곳은 뮤지컬밖에 없었어요.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평함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내가 있을 곳이고요."
―요즘 하는 고민은 뭔가요?
"누군가에게 휩쓸려 가지 않고 나 나름의 정신을 소유하는 것. 이제까지는 칭찬받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내 중심을 지키고 나만의 철학을 정립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과거의 내가 얼마나 못 나갔고 그런 데서 벗어나서 지금 내 모습을 파악하고 현실에 임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그는 "할아버지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영웅' 1막 막바지에 그는 이런 소절의 노래를 부른다.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도록."
개그맨 출신이라는 꼬리표
―한물간 개그맨으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개그맨을 개그맨으로 본 게 무슨 오해인가요.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개그맨으로 TV에 출연하면서 월급도 받았어요. 웃기지 못한 개그맨이라 좀 그렇지만요(웃음). 수도권을 벗어나면 전 여전히 잘 못 나가는 개그맨에 불과해요. '요즘 뭐해? 밥은 먹고 다녀? TV 좀 나와' 하시는 분들을 하나하나 쫓아다니며 '저 뮤지컬 하는 거 모르세요? 상도 여러 개 받았어요. 밥 먹고 살 만큼 돈도 잘 벌고 있단 말이에요'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개그맨 출신이라는 딱지가 싫지 않은가 봐요.
"관객들을 대할 때 개그맨 출신이 이득인 경우가 훨씬 많아요. '개그맨인데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 하고 코웃음쳤다가 '개그맨인데 이렇게 잘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거든요. 개그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잘 못 웃기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해 개그맨 신동엽, 이휘재, 이영자 등 걸출한 개그 스타들을 배출한 개그 동아리 '개그클럽' 회장도 맡았다. 꿈꾸던 개그맨 데뷔도 동기 중 최연소로 하게 됐다. 인생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듯했다.
―개그맨이란 꿈을 금방 이뤘죠?
"시험 한 번 만에 공채 시험에 합격했어요. '아, 사람들이 역시 나를 알아주는구나' 했죠. 인생 3대 악재라고 꼽는 것들이 있잖아요. 초년 출세, 중년 사별, 노년 빈곤. 그중에 전 초년 출세였던 거예요. 원래 이렇게 쉽게 되는 거구나 싶었어요. 불과 몇 달 지났을 뿐인데 예고 없는 추락이 시작되더라고요. 뭘 해도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슬럼프가 시작된 게 그쯤인가요?
"연기력 밑천이 드러난 거죠. 선배들이 대본 던져주면 이게 연기인지 뭔지 생각도 없이 있다가 무대 위에 올려주면 외운 대사를 읊는 수준이었죠. 그날 반응이 안 좋았으면 '왜 그랬을까' 분석을 해야 하는데 실실 웃어넘겨 버리고 선배들이 사주는 소주나 얻어 마시고요. 연극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 끝나고 바로 데뷔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배운 연기 지식도 거의 없었어요. 개그, 크게 보면 연기에 대한 철학이 전혀 없었던 거죠."
"넌 뭘 해도 중간 이하"
―좌절했겠어요.
"PD 한 분이 술자리에서 그러는 거예요. '성화는 뭘 시켜도 중간이거나 아니면 그 약간 밑이라 쓰기가 애매해.' 열 받지만 그게 맞는 말인 거예요. 가슴을 확 찌르더라고요. 사람들을 빵 터뜨린 적도 없었고 선배들한테는 못 웃긴다고 매일 혼났으니까요. 나한테도 뭘 시켜줘야 반등의 기회가 생기고 나도 뜨고 중간 이상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거 아니냐고 생각했죠."
―그래서 드라마로 눈을 돌린 건가요?
"쓴맛만 보던 저한테 기회가 찾아왔어요.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복학생 정만수 역을 맡게 됐죠. 사고뭉치 역할이었어요. 그 역할로 꽤 인기를 끌어서 CF도 찍었고 카이스트가 끝나고도 비슷한 캐릭터로 몇 작품에 더 출연도 했어요. '드디어 나도 중간 이상이거나 좀 위로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개그 쪽에 있어봤자 나한테 역할도 안 주고 만날 욕이나 먹는데 드라마 판에서 살길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몇 달 지나니까 약속이나 한 듯이 하루아침에 일이 뚝 끊겼어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아뇨,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문제였어요. 소위 연기를 들켰다고 하죠. 카이스트 정만수 캐릭터로 재탕, 삼탕뿐만 아니라 오탕, 육탕까지 해먹었으니까요. 매일 똑같은 모습, 비슷한 캐릭터, 식상한 느낌으로는 오래 못 간다는 걸 그제야 안 거죠."
중간 이하 개그맨의 반란
―뮤지컬이 세 번째 기회였나요?
"스파크라고 해야 할까요. 그 전까지 제가 받았던 박수들은 전부 '오빠 잘하세요' 같은 하이톤 여학생들의 팬심 어린 응원이었는데 뮤지컬은 달랐어요. '아이 러브 유'로 첫 공연을 하는데 중간에 관객들이 배꼽 잡고 웃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요. 그런데 그 박수는 '너 잘했다'의 박수인 거예요. 제대로 된 박수를 처음 받은 거죠. 사람들의 완전히 무장 해제된, 정성화를 위한 박수를 받고 나니까 '이게 진짜 박수라는 것이구나'를 안 거죠."
뮤지컬 '아이 러브 유'(2004년)를 시작으로 그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2007), '영웅'의 안중근(2009), '라카지'의 마담 자자(2012)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2012), '킹키부츠'의 롤라(2016) 등 주인공 역할을 줄줄이 꿰찼다. 지난 2010년을 시작으로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매년 남우주연상, 남자배우상, 대상을 휩쓸었다. 개그맨 시절엔 상상도 못 할 상들이었다.
―연습량이 엄청난 걸로 유명하던데요.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추락하지 않겠다'고 수천 번을 되뇌었어요.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았어요. 처음으로 코미디가 아닌 정통 연기를, 그것도 주인공을 하게 된 거죠. 일산에 집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연습실 앞 3분 거리에 방 하나를 단기 임차했어요. 오전 10시에 연습 시작이면 전 8시 30분쯤 갔고 오후 6시쯤 끝나면 밤 10시 넘어서까지 연습실에 남아있었어요. 제작사 측에선 산초 역할로 염두에 뒀던 것을 고집 부려 돈키호테를 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그냥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해내야 한다'는 필사의 몸부림이었죠."
―결과가 무대에서 보이던가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무대라는 공간이 참 발가벗겨지기 좋은 곳이에요. 조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나가면 '아, 뭐가 잘 안 되고 있구나' 느껴지거든요. 또 그 전까지는 무대에 오르면 조금 떨렸거든요. 그런데 연습을 물고 늘어지니까 무대가 너무 편한 거예요. 무대가 두렵지 않았어요."
칭찬 먹고 살던 배우
―얼마나 준비해야 무대에 서도 되겠다 싶은가요?
"배우마다 기준이 다 다르지만 저는 공연 전 30~40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훑어봐야 마음이 편해요. 공연 전체가 구슬처럼 꿰지거든요. 그래야 시나리오가 완전히 내 것이 되고 나가서 허둥대지 않고 연기를 하게 돼요. 요즘도 모든 연습, 모든 공연을 전부 녹음해요. 끝나면 다시 들어보고 부족한 것은 고치려고 하죠."
―'영웅'은 벌써 300회가 넘게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섰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요?
"뮤지컬은 진짜예요. 관객이 저랑 대면하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관객을 100만명 정도 만난 거 같아요. 2000만명이 절 TV로 보는 것보다 저를 직접 만난 관객의 절반이라도 그들 가슴속에 들어가는 게 진짜라는 뜻이에요."
―관객들 평가에 목매는 것이 독이 되지는 않나요?
"그래서 이젠 '욕먹지 않으려고'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려고 훈련해요. 2012년에 '레 미제라블'을 하면서 욕을 엄청나게 먹었어요. 첫 곡이 17분짜리인데 버겁더라고요. 첫 공연, 첫 곡에서 음 이탈, 일명 '삑사리'를 냈어요. 저는 키워진 뮤지컬 배우가 아니잖아요. 발성이고 연기고 한계를 느낀 거죠. 그때부터 노래와 올바른 발성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배워야 했나요?
"믿음을 갖기 위해서예요. 우리나라는 공연 홀이 아주 넓어서 무대 위에선 내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어느 순간 '소리가 잘 나고 있나? 음정이 잘 맞나?' 하는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때 그 의심을 거두고 소리가 잘 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 믿음을 갖는 것도 훈련이에요."
―그 전까진 자신을 잘 못 믿었나요?
"항상 깊숙한 곳에 불안함이 깔려있던 것 같아요. 내가 하는 게 개그인지 연기인지도, 정성화가 누군지도 몰랐던 거죠. 지금은 어렴풋이 뭘 하는지는 알고 있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조금은 파악하고 있고요."
'할아버지 배우' 되는 게 꿈
―다시 개그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잘 못할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바닥에 발붙이고 있는 많은 장인이 있잖아요. 그 틈바구니에서 제가 견딜 수가 없어요. 또 정성화를 있는 그대로 믿어준 곳은 뮤지컬밖에 없었어요.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평함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내가 있을 곳이고요."
―요즘 하는 고민은 뭔가요?
"누군가에게 휩쓸려 가지 않고 나 나름의 정신을 소유하는 것. 이제까지는 칭찬받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내 중심을 지키고 나만의 철학을 정립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과거의 내가 얼마나 못 나갔고 그런 데서 벗어나서 지금 내 모습을 파악하고 현실에 임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그는 "할아버지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영웅' 1막 막바지에 그는 이런 소절의 노래를 부른다.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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