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팬들도 응원 메시지까지 보내며 격려해줘"

입력 : 2017.02.14 03:02

[뮤지컬 '영웅'서 안중근 역할 첫 도전하는 안재욱]

올해로 8번째 공연… 연일 매진
관객 "깊이 더한 노래 실력" 호평

"지식인·아버지로서의 삶 연기"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인간적으로 고뇌했을 부분이 굉장히 아프고 짠했습니다. 성당에서 기도하면서 '바보처럼 이제 와서 두렵습니다'라고 노래하거나, 죽기 전 '내 아이들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으로 모아지길 바라오'라고 다짐하는 아버지 안중근을 절절히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뮤지컬 감독 윤호진이 제작한 창작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역에 처음 도전한 배우 안재욱(46)은 "나이가 들면 노련해질 줄 알았는데 이번 무대는 가면 갈수록 더 떨린다"며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둬냈다. 그동안 '안재욱' 하면 떠오르던 '막내아들 이미지'나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탤런트' 같은 밝고 쾌활한 모습이 많이 사라진 듯했다. 안중근과 같은 순흥 안(安)씨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영웅이라는 점에서 어깨가 더 무겁단다. 최근 만난 안재욱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직위의 행동파 지식인이자 '인간 안중근'을 다각도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재욱은“여느 연습 때와는 달리 배우들끼리 의식하거나 눈치 보고, 좋은 표현 몰래 하거나 하는 경쟁 없이 안중근 역 4명이 한몸처럼 움직였던 것 같다”며“단단한 팀워크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안재욱은“여느 연습 때와는 달리 배우들끼리 의식하거나 눈치 보고, 좋은 표현 몰래 하거나 하는 경쟁 없이 안중근 역 4명이 한몸처럼 움직였던 것 같다”며“단단한 팀워크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처음 무대에 올랐다. 이번이 8번째 공연. 초연 때부터 안중근 역할을 맡은 정성화를 비롯해 2010년에 이어 다시 안중근에 도전한 양준모, 이번에 새롭게 이지훈과 함께 안재욱이 합류해 배우 4명이 공연마다 돌아가며 안중근을 연기한다.

이번 역할은 안재욱 개인으로서도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 4년 전 뇌출혈 증상으로 생사를 오간 뒤 삶에 대해 더 진지해졌다. 죽음의 문턱을 밟아보니 미처 하지 못하고 지나버리는 생에 대한 아쉬움도 강해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가족에 대한 애착도 깊어졌다.

"윤호진 감독님이 출연 제의를 몇 번 하셨는데 고사해왔어요. 우선 책임감이 워낙 막중한 작품이기 때문이었고, 일본 팬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었죠. 하지만 2년 전 고선웅 연출가의 '아리랑'에 출연하고 지난해 이번 작품 대본을 받아들면서 정말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걱정했던 일본 팬들도 격려해주고 요즘엔 응원 메시지까지 보내더라고요."

'영웅' 속 단지 동맹 장면. /에이콤
'영웅' 속 단지 동맹 장면. /에이콤
1994년 탤런트로 데뷔한 안재욱은 뮤지컬 '잭 더 리퍼' '황태자 루돌프' 등에 출연하며 실력을 다졌다. 각종 게시판엔 "이렇게 안재욱이 노래 잘하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 넘친다. "연습 기간에 쉬는 날에도 배우들이 서로 나와 미흡한 부분을 도와주고 조언해줄 정도로 끈끈한 분위기예요. (정)성화가 8번 내리 안중근 역을 맡으며 쌓아온 내공을 엎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성악을 전공한 (양)준모의 성량을 따라잡겠다는 생각도 안 했어요. 그저 제가 느끼는 안중근의 색을 한껏 표출해보자 애썼습니다." 안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임선애는 무대 뒤에서 안재욱 노래를 듣다가 "슬퍼서 눈물이 줄줄 났다"고 했다.

올해 매진 기세는 특히 대단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1·2층 1840석 무대는 막을 올린 지 사흘 뒤인 지난달 1월 21일부터 연일 매진됐다. 쏟아지는 관객 요청에 최근에는 3층 600여석도 문을 열었다. 26일 서울 공연을 마치면 지방을 순회한다.

뮤지컬은 안중근의 그 유명한 '손도장'이 탄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909년 2월의 '단지(斷指) 동맹'이 바로 그것이다. 그 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수감돼 순국하기까지 1년간 치열한 여정을 담았다.

"요즘 시대 영웅이라면 공명심에 앞뒤 안 가리고 나서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안중근 의사는 달랐어요. 오로지 나라와 민족만 걱정했지요. 그 내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게 우리 시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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