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5.07 15:33
이용덕 개인전 ‘PORTRAIT OF SEEING : 비워진 모습’
존재의 흔적 남긴 역상조각
근원적인 공간과 인간 모습 담아
근작 비롯한 20여 점
5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 광화문 ACS(아트조선스페이스)



보통 점토로 성형하고 표면을 따라 몰딩을 만든 뒤, 빈자리에 청동이나 석고 등을 채워 넣어 조각을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몰딩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첫인상은 움푹 파인 구덩이처럼 보이지만, 이내 반전이 일어난다.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시선을 옮기면 작품이 음각이 아닌 양각으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듯한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역상조각으로 4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용덕(66) 개인전 ‘비워진 모습 PORTRAIT OF SEEING’이 7일 서울 중구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막했다. 케이트 림(Kate Lim)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와 아트조선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조각의 본질과 감각을 탐구해 온 작가의 최근 작업을 조망하는 자리로, 존재의 자리가 비워진 채 잔상만을 남긴 시각적 경험을 통해 실재와 환영,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이용덕은 역상조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던 과거에서부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해 역상조각이라는 미술사적 영역을 구축했다. 추상조각이 성행하던 당시의 미술계 상황을 빗대어본다면 더욱 대단한 성과다. 역상조각이라는 단어 또한 2006년 마카오 미술관 개인전에서 당시 큐레이터에 의해 비로소 명명됐다.
이용덕의 작품은 음각으로 파낸 공간에서 양각처럼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내며 고정된 형상 대신 빛, 시점,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 조형 구조를 제시한다. 기존 조각이 물리적 부피와 고정된 시각을 중시했다면, 이용덕의 작업은 이를 해체하고 감각의 환영과 다층적인 인식을 유도한다. 이에 대해 전시 평문을 쓴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는 “역상조각은 관객의 호기심과 관심을 먹고 잠에서 깨어나는 미술이다. 뒷걸음치거나 앞으로 다가갈 때, 살짝 포착된 이미지의 단편이 점차로 완성되거나, 보였던 이미지가 무너지며 이지러지는 재미있는 행동을 한다. 게다가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짜같이 느껴지는 볼록한 이미지는 정교하게 핵심만 남겨서 기억에 저장하고 싶은 사진의 이미지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닮아있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근작은 작가만의 서정성을 담아 땅, 물, 하늘 같은 풍경의 기본 요소를 담아낸 색감이 돋보인다. 또한 인물의 순간적인 존재감과 함께 원초적인 빈 공간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탐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람객은 이러한 공간 위에 자신만의 정황과 해석을 덧입히며 감상의 여백을 경험할 수 있다.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은 “시선이 움직임에 따라 작품 또한 움직이는 것 같다. 또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직접 작품을 봤을 때 생생함이 살아나는 것 같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한편, 이날 오프닝에는 전시 연계 연극 ‘음각 로맨스’가 상연돼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의 공동 기획을 맡은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가 대본을 쓰고 임야비 총체극단 ‘여집합’ 단장이 연출을 맡았다. 서정적인 조명과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전시장의 작품이 어우러져 보다 입체적인 관람 경험을 제공했다는 평이다. 작가 이용덕이 직접 배우로 깜짝 등장해 연기를 선보여 무대 안팎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한 20일 오후 3시에는 '이용덕 작가와의 대화×TWO PIANOS PERFORMANCE' 행사가 예정돼 보다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용덕은 역상조각을 통해 우리 모두의 모습과 풍경을 찍어낸다. 사진 촬영과도 비슷한 원리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이 축적돼 만들어진 것으로, 작가는 다양한 변화와 고민 속에서도 한 가지 변치 않는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했다. 6월 7일까지. 무료. 화~토 10:00~18:00. (02)736-7833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