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th]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
한국서 8년째 크리스마스 공연… '겨울연가' 삽입곡 만든 유키 구라모토
전자사전·녹음기 갖고 다니며 한국어 '열공'… 듣기에 쉬운 음악, 만들기는 쉽지 않아
힘든 일이나 고민, 연애 얘기… 곡을 쓸 때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靈感 얻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65·사진)는 일본 뉴에이지 음악의 대표 주자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일본은 물론 한국인들의 귀도 사로잡았다. 그의 이름 모르는 사람도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영화 ‘달콤한 인생’에 삽입된 곡들이 흘러나오면 ‘아, 이 음악!’ 하고 무릎을 친다.
일본인치고 한국에서 유키 구라모토처럼 사랑받는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1998년 한국에 정식 발매된 1집 ‘Reminiscence’를 시작으로 지난해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Lake Louise’ 발매 30주년 기념 앨범 ‘Misty Lake Louise’까지 총 21장의 앨범으로 16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린 데 이어, 1999년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100회가 넘는 공연에서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2009년부터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이란 공연으로 한국 팬들을 찾아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에 온 그를 지난 22일 만났다. 산타클로스처럼 흰 수염 성성한 얼굴로 나타난 그는 “크리스마스에 공연할 수 있다는 건 내게도 선물 같은 일”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유키 구라모토입니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유키 구라모토(65)가 한국 공연 때마다 가지고 다닌다는 '전용 가방'에서 꺼내 놓은 건 전자사전과 녹음기였다. 공연을 한국어로 진행하는 그가 반드시 챙기는 필수품이란다. 전자사전으로는 모르거나 헷갈리는 한국어 단어를 찾아서 확인하고 녹음기로는 사전에 통역사가 녹음해준 문장들을 반복해 듣고 따라 하면서 연습한다. "저를 사랑해주시는 한국 팬들에게 이 정도의 '서비스'는 해야지요(웃음)."
크리스마스 공연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23~25일)을 앞두고 서울에 온 그를 지난 22일 서울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났다. '내게 음악은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하는 유키 구라모토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그의 음악 인생을 들려줬다.
인기 비결? 쉬우면서도 위로가 되는 음악
―8년째 크리스마스 공연이다. 전석 매진이고.
"크리스마스는 한국 사람들에겐 매우 특별한 날 같다. 늘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는 팬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어로 공연을 진행하는 이유는?
"누구나 공연장에 가면 다음 곡은 뭘까, 언제 박수를 쳐야 하나 불안하지 않나. 관객이 불안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한국어로 설명해주고 싶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관객들이 더 불안해할지도 모르지만(웃음)."
―크리스마스마다 한국에서 공연하면 일본에서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지 않나?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크리스마스가 쉬는 날이었던 건 두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음악이 일이 되면서 크리스마스에 일을 하는 게 오히려 기쁘다. 내겐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팬들이 내 음악을 듣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편안해졌다' '힘이 된다' 하신다. 그게 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아닐까?"
―음악이 쉽고 편하다는 평 마음에 드나?
"클래식이나 재즈와 비교하자면 내 음악이 쉬운 구조를 가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적은 재료를 가지고 곡을 만든다는 건 매우 어렵다. 듣는 사람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많이 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발라드 가수 신승훈과 작업했고 한국 오케스트라, 많은 연주자와도 작업한다. 한국에선 '유키 구라모토' 하면 '뉴에이지 음악'을 떠올리지만 일본에선 드라마 OST나 뮤지컬 음악 등 대중음악을 다양하게 만들고 연주한다. 여수엑스포 일본관의 음악을 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도 음악과 관계된 거라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일상의 고민, 연애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
―지난해 'Lake Louise' 발표 30주년을 맞아 앨범도 냈다.
"지금까지 만든 곡이 200곡이 넘는다. 모두가 내 자식처럼 사랑스럽다. 이 곡들을 만들고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게 바로 데뷔곡 'Lake Louise'다. 내겐 '은인'과도 같은 곡이다. 고뇌하고 괴로워하던 젊은 날의 나를 세상에 꺼내준 곡이기도 하다."
―곡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자연, 사랑, 동경 같은 거창한 표현들을 많이 했지만 실은 일상생활에서 주로 얻는다. 힘든 일이나 고민, 연애 얘기 등 사소한 것들."
―곡을 쓰거나 연주할 때 지키는 원칙이나 징크스는?
"클래식 음악처럼 화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도 편안하다. 공연 전에는 '정신 통일'하는 자세로 말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따로 손 관리를 하시는지?
"악수를 청하는 팬들이 가끔 있는데 이것만은 양해를 구하고 피하는 편이다. 다행히 손이 아프거나 하는 직업병은 없다."
―수염 관리는 따로 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바리캉을 구입해서 직접 관리한다. 그전엔 가위로 해서 시간이 엄청 걸렸다. 뭘 모르면 몸이 고생한다(웃음)."
―여유가 생길 땐 주로 무얼 하나?
"여유가 거의 없다. 연주나 연습을 안 해도 늘 머릿속으로 곡 생각을 하니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아내와 여행을 가려고 노력한다. 주로 유럽으로 가지만 나중에 은퇴하고 여유가 생기면 한국을 정말 '여행'하고 싶다."
음악이란 인생 그 자체!
―처음 피아노를 쳤던 날을 기억하는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교 선생님 댁에서 처음 피아노를 봤다. 그전까지 장난감 피아노만 쳤던 터라 건반이 많은 것도, 소리도 신기했다. 선생님이 먼저 내 재능을 알아보고 부모님께 제대로 가르쳐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3학년 때 부모님이 피아노를 사주셨는데 6학년 때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안타깝게도 피아노가 없어졌다."

―피아노를 그만뒀다는 뜻인가?
"내 피아노는 없었지만 계속 피아노를 쳤다. 학교에 남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연습하거나 하교 후에 남아서 연습했다. 겨울엔 추워서 장갑을 끼고 연습했다. 하지만 음악을 계속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진로를 바꿨다."
―이공계로 진학해서도 피아노는 계속 쳤나?
"도쿄공업대학 물리학과로 진학했는데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고학생(苦學生)이라 호텔이나 나이트클럽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대학원 진학할 때 응용물리학과 음악의 길에서 고민했다. 하지만 음악이 이미 일이 돼버렸고 수입도 포기할 수 없었다. 박사과정 들어가기 전 공부를 그만두고 음악을 택했다. 클래식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대중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음악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인생 그 자체다. 즐겁고 또 힘들고. 음악도 인생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다."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힘들 때마다 도와주고 기회를 준 많은 스승들이다. 내게 처음 음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봐준 초등학교 선생님, 피아노가 없어서 연습할 곳이 없던 내게 학교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선생님."
―한·일 관계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첫 음반을 내고 첫 공연을 했던 당시와 비교하자면 이미 많이 변했다. 한국에서 내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일본에서도 한국 음악을 많이 듣는다. 음악과 문화로 충분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유키 구라모토의 10년 후는 어떨까?
"그때까지 살아 있을 것 같다(웃음). 연주 실력이 늘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곧 새해다.
"올 한 해는 정말 세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인간은 늘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니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나아질 거다. 분명히!"
유키 구라모토는
1951 일본 사이타마현 우라와시 출생
1970~77 도쿄공업대학교 물리학과·동 대학원 응용물리학과 석사 졸업
1986 첫 피아노 솔로 앨범 ‘Lake Misty Blue’ 발표
1998 1집 앨범 ‘Reminiscence’ 정식 발매
1999 첫 내한콘서트
2007 한국 진출 10년 기념 앨범 ‘Romance Collection’ 발매
2009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 크리스마스 공연 시작
2012 여수엑스포 일본관 음악 총제작
2015 ‘Lake Louise’ 30주년 기념 앨범 ‘Misty Lake Louise’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