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09 00:40
더 언더독
하루아침에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개들이 유기견 보호소로 들어간다. 규칙만 따르면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생활에 적응해 가지만, 바깥세상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동료가 은밀하게 안락사당했다는 사실을 알곤 집단 탈출을 결심한다.
이런 줄거리의 뮤지컬이 아동극이 아니라 성인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 창작 뮤지컬 '더 언더독'(이성준 음악감독, 유병은 연출·사진)의 설정은 황당하다. 김준현·김법래·김보강처럼 꽤 잘나가는 뮤지컬 스타들이 진돗개나 셰퍼드로 분장하고, 극 중 개들은 박노식·장동휘가 나오는 옛 액션영화 스타일로 폼을 잡고 "얼마나 싸우고 또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을까" 같은 비장한 대사를 읊는다.
이런 줄거리의 뮤지컬이 아동극이 아니라 성인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 창작 뮤지컬 '더 언더독'(이성준 음악감독, 유병은 연출·사진)의 설정은 황당하다. 김준현·김법래·김보강처럼 꽤 잘나가는 뮤지컬 스타들이 진돗개나 셰퍼드로 분장하고, 극 중 개들은 박노식·장동휘가 나오는 옛 액션영화 스타일로 폼을 잡고 "얼마나 싸우고 또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을까" 같은 비장한 대사를 읊는다.

하지만 1막이 채 끝나기 전에 관객은 깨닫게 된다. '유기견 보호소'라는 작품 무대가 인간 사회 전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을 말이다. 극 중 '개'들은 개성을 무시당한 채 규율과 명령에 순치(馴致)되고, 용도가 폐기되는 순간 가차 없이 버려진다. 평생 자기 임무에 열정을 쏟았지만 늙거나 힘이 빠졌다는 이유로 보호소에 보내진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출산 전용 모견(母犬)에게선 각박한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지친 모습이 고스란히 비친다.
이쯤 되면 "그 희생의 대가가 이것인가… 뜨거운 심장 바쳤던 나의 지난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애절한 가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통제된 환경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섬뜩한 구도는 존 프랭컨하이머 감독의 영화 '세컨드'(1966)를,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운명을 조종당하는 집단의 모습은 나가이 고 만화 '한밤중의 전사'(1974)를 연상케 했다. 모호하게 처리된 열린 결말은 긴 여운을 남겼다.
암울하면서도 호소력을 갖춘 25곡의 삽입곡(넘버)과 중극장에서 이례적인 3층 구조 무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민경수의 정교한 조명은 이 까다로운 작품에 투입된 제작진의 공력을 짐작하게 했다. 올해 나온 창작 뮤지컬 중 가장 독특한 작품이다.
▷내년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1522-6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