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08 09:45

대중에게 익숙한 대표 넘버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메스실린더 속 약물처럼 뮤지컬의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극의 무게감으로 인해 결연했지만, 과장되지는 않았다. '지킬앤하이드' 프로덕션은 12년 간 키워온 한국 창작진은 음악, 무대, 조명, 의상으로 울창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객석에서 절로 터지는 환호까지 더해지면서 뮤지컬의 황홀경이 빚어졌다.
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지켜본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는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공연이었다. 프로듀서를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를 비롯한 한국 창작진, 브래드 리틀 못지않은 스타덤을 예고하고 있는 지킬 & 하이드 역의 브래들리 딘을 비롯한 브로드웨이 배우들, 대구 기반의 제작사 파워엔터테인먼트와 방송사 TBC 등 지역의 적극적인 투자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세 부분으로 나눠 이번 월드투어의 특징을 살펴봤다.
▲한국 창작진의 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다. 한국 가요의 질감을 지닌 프랭크 와일드혼의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입성했을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 프로덕션은 2004년 이 작품을 탈바꿈시켜 인기작으로 만들었다. 이야기 수정은 물론 편곡, 의상, 세트 수정이 가능한 '넌 레플리카'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이번 프로덕션은 이전의 성과에 힘 입어 오디 컴퍼니가 월드 투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렌트' '신데렐라' '맘마미아!' 등을 선보인 워크 라이트 프로덕션이 파트너사로 합류했다. 기존 한국 프로덕션과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외관이다. '지킬앤하이드'는 스펙터클 중심의 뮤지컬이 아닌 드라마 중심이라 기존 단조로운 무대는 이를 담아내기에는 여백이 보였다. 변화된 무대는 세계 어느 곳에 가져다 놓아도 무색하지 않을 매끈함이 돋보였다.
2층 구조를 축으로 다이아몬드 구조를 채택한 이번 월드 투어 버전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지킬, 루시, 엠마의 동선이 대표적이다. 지킬을 가운데 두고 그의 약혼녀인 엠마가 2층, 런던 클럽에서 일하는 무용수로로 밑바닥 삶을 사는 루시가 1층에서 '그의 눈에서'를 부를 때 세 캐릭터 관계의 층위가 한껏 더 다가온다. 지킬이 그 유명한 넘버 '지금 이 순간'을 부르기 전 등장하는 실험실에서 알록달록 물약이 담긴 1800개의 메스실린더 풍경은 호사스럽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건 이우형의 조명이다. 기존 한국 프로덕션보다 다채로워졌다. 지킬과 하이드가 몇 초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대립하는 부분인 '대결'(Confrontation)의 부를 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의 번뜩거림, 암전 속 섬광처럼 등장하는 빠른 전환 등으로 눈이 호강한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스완은 ‘지킬앤하이드'에 대해 인간의 존재론적인 심리와 열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을 갖고 있는데 이번 공연은 그 두 에너지가 팽팽하게 밀고 당긴다"고 소개했는데 조명은 이런 드라마투르기에 복무한다.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안정된 기량
한 배우가 연기하는 지킬 & 하이드는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선과 악이라는 극대화된 양면성을 지닌 두 캐릭터다. 1인2역 연기뿐 아니라 넘버 역시 2개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야 하는 만큼 고난도 연기력과 가창력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지킬앤하이드'가 인기를 끈 이유도 이 역을 극적으로 소화해낸 조승우, 류정한 등 톱 배우들 기량 덕분이었다.
신 대표가 밝힌 것처럼 대본의 세세한 변화를 느끼지 못해도 주역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일 여지가 어느 뮤지컬보다도 크다.
브로드웨이에서 '더 라스트 십'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 등에 출연하며 실력을 인정 받은 딘은 특히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 열정이 많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는 격한 감정을 지닌 배역들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지킬에서는 감정을 억제하는 신사다운 면을 뽐내던 그는 하이드에서 돌변, 캐릭터의 드라마틱한 활강을 선사한다. 특히 배우들의 차별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금 이 순간'에서 그의 특징이 드러났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낭만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일부에서는 로맨틱한 넘버로 치부되지만 이 만큼 결연한 순간에 부르는 노래도 없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에게 임상 실험을 하며 약물을 투입하기 직전 "나만의 꿈,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라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만 신사다운 지킬의 면모를 선보이던 딘은 두려움과 함께 단호함을 불어넣으며 이 순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딘과 함께 이번 대구 공연에 출연하는 루시 역의 다이애나 디가모, 엠마 역의 린지 블리븐도 안정된 역량을 선보였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 준우승자인 디가모는 힘이 배어 있으면서도 청량한 고음을 들려줬다. 한국에서는 다소 강렬한 배우들이 이 역을 소화했는데, 순수함이 더 묻어나는 디가모의 루시는 지킬에게 빠지면서 부르는 '당신이라면'에 더 애절함을 부여했다.
깨끗한 음색의 블리븐 역시 엠마의 지고지순함에 어울렸는데 '한 때는 꿈에'에서 지킬에 대한 사랑의 감미로움을 배가시키며 그의 파멸에 비극성을 더한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뮤지컬 전체를 통틀어 앙상블의 꽃으로 통하는 넘버 '가면'(facade)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까발리며 맞추는 배우들의 합도 일품이었다.
▲지방에서 차곡차곡 정리되는 프로덕션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서도 바로 단숨에 이 꿈의 무대로 진출하는 프로덕션을 드물다. 프리 프로덕션을 거쳐 다른 지역에서 선보인 후 차곡차곡 수정, 보완을 거쳐 브로드웨이로 입성한다. 이번 '지킬앤하이드'도 이 사례를 따른다. 수도권이 아닌 지난 1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돛을 올린 뒤 순항하고 있다.
대구 지역의 공연제작사인 파워엔터테인먼트, 이 지역 방송사인 TBC가 함께 한다. 특히 대구는 서울에 이어 제2의 공연도시로 통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4년 발표한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대구지역 인구 1000명당 객석 수는 17.5석이다. 7대 특별·광역시 중 서울(18석)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계명아트센터(1954석), 오페라하우스(1508석), 수성아트피아(1159석) 등 1000석 이상의 대공연장도 10곳이 넘는다. 지난 2월에는 대구 태생의 대형 창작뮤지컬 '투란도트'가 서울에 입성,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라이선스 재공연은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처음 선보인 뒤 서울로 올라왔고 뮤지컬 '위키드' 라이선스 두 번째 시즌 역시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포문을 열었다. 대구에서 검증을 거친 이 작품들은 서울에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계명아트센터는 이번 '지킬앤하이드' 공연으로 서울 지역 공연장 못지않은 명징한 음향 등을 뽐내며 이 작품의 프로덕션을 다지는데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킬앤하이드'는 25일까지 공연한 이후 내년 3월10일~5월21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을 거쳐 월드 투어에 돌입하게 된다. 일단 중국 원어 공연 등이 예정됐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극의 무게감으로 인해 결연했지만, 과장되지는 않았다. '지킬앤하이드' 프로덕션은 12년 간 키워온 한국 창작진은 음악, 무대, 조명, 의상으로 울창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객석에서 절로 터지는 환호까지 더해지면서 뮤지컬의 황홀경이 빚어졌다.
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지켜본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는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공연이었다. 프로듀서를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를 비롯한 한국 창작진, 브래드 리틀 못지않은 스타덤을 예고하고 있는 지킬 & 하이드 역의 브래들리 딘을 비롯한 브로드웨이 배우들, 대구 기반의 제작사 파워엔터테인먼트와 방송사 TBC 등 지역의 적극적인 투자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세 부분으로 나눠 이번 월드투어의 특징을 살펴봤다.
▲한국 창작진의 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다. 한국 가요의 질감을 지닌 프랭크 와일드혼의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입성했을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 프로덕션은 2004년 이 작품을 탈바꿈시켜 인기작으로 만들었다. 이야기 수정은 물론 편곡, 의상, 세트 수정이 가능한 '넌 레플리카'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이번 프로덕션은 이전의 성과에 힘 입어 오디 컴퍼니가 월드 투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렌트' '신데렐라' '맘마미아!' 등을 선보인 워크 라이트 프로덕션이 파트너사로 합류했다. 기존 한국 프로덕션과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외관이다. '지킬앤하이드'는 스펙터클 중심의 뮤지컬이 아닌 드라마 중심이라 기존 단조로운 무대는 이를 담아내기에는 여백이 보였다. 변화된 무대는 세계 어느 곳에 가져다 놓아도 무색하지 않을 매끈함이 돋보였다.
2층 구조를 축으로 다이아몬드 구조를 채택한 이번 월드 투어 버전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지킬, 루시, 엠마의 동선이 대표적이다. 지킬을 가운데 두고 그의 약혼녀인 엠마가 2층, 런던 클럽에서 일하는 무용수로로 밑바닥 삶을 사는 루시가 1층에서 '그의 눈에서'를 부를 때 세 캐릭터 관계의 층위가 한껏 더 다가온다. 지킬이 그 유명한 넘버 '지금 이 순간'을 부르기 전 등장하는 실험실에서 알록달록 물약이 담긴 1800개의 메스실린더 풍경은 호사스럽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건 이우형의 조명이다. 기존 한국 프로덕션보다 다채로워졌다. 지킬과 하이드가 몇 초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대립하는 부분인 '대결'(Confrontation)의 부를 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의 번뜩거림, 암전 속 섬광처럼 등장하는 빠른 전환 등으로 눈이 호강한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스완은 ‘지킬앤하이드'에 대해 인간의 존재론적인 심리와 열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을 갖고 있는데 이번 공연은 그 두 에너지가 팽팽하게 밀고 당긴다"고 소개했는데 조명은 이런 드라마투르기에 복무한다.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안정된 기량
한 배우가 연기하는 지킬 & 하이드는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선과 악이라는 극대화된 양면성을 지닌 두 캐릭터다. 1인2역 연기뿐 아니라 넘버 역시 2개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야 하는 만큼 고난도 연기력과 가창력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지킬앤하이드'가 인기를 끈 이유도 이 역을 극적으로 소화해낸 조승우, 류정한 등 톱 배우들 기량 덕분이었다.
신 대표가 밝힌 것처럼 대본의 세세한 변화를 느끼지 못해도 주역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일 여지가 어느 뮤지컬보다도 크다.
브로드웨이에서 '더 라스트 십'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 등에 출연하며 실력을 인정 받은 딘은 특히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 열정이 많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는 격한 감정을 지닌 배역들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지킬에서는 감정을 억제하는 신사다운 면을 뽐내던 그는 하이드에서 돌변, 캐릭터의 드라마틱한 활강을 선사한다. 특히 배우들의 차별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금 이 순간'에서 그의 특징이 드러났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낭만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일부에서는 로맨틱한 넘버로 치부되지만 이 만큼 결연한 순간에 부르는 노래도 없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에게 임상 실험을 하며 약물을 투입하기 직전 "나만의 꿈,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라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만 신사다운 지킬의 면모를 선보이던 딘은 두려움과 함께 단호함을 불어넣으며 이 순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딘과 함께 이번 대구 공연에 출연하는 루시 역의 다이애나 디가모, 엠마 역의 린지 블리븐도 안정된 역량을 선보였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 준우승자인 디가모는 힘이 배어 있으면서도 청량한 고음을 들려줬다. 한국에서는 다소 강렬한 배우들이 이 역을 소화했는데, 순수함이 더 묻어나는 디가모의 루시는 지킬에게 빠지면서 부르는 '당신이라면'에 더 애절함을 부여했다.
깨끗한 음색의 블리븐 역시 엠마의 지고지순함에 어울렸는데 '한 때는 꿈에'에서 지킬에 대한 사랑의 감미로움을 배가시키며 그의 파멸에 비극성을 더한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뮤지컬 전체를 통틀어 앙상블의 꽃으로 통하는 넘버 '가면'(facade)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까발리며 맞추는 배우들의 합도 일품이었다.
▲지방에서 차곡차곡 정리되는 프로덕션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서도 바로 단숨에 이 꿈의 무대로 진출하는 프로덕션을 드물다. 프리 프로덕션을 거쳐 다른 지역에서 선보인 후 차곡차곡 수정, 보완을 거쳐 브로드웨이로 입성한다. 이번 '지킬앤하이드'도 이 사례를 따른다. 수도권이 아닌 지난 1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돛을 올린 뒤 순항하고 있다.
대구 지역의 공연제작사인 파워엔터테인먼트, 이 지역 방송사인 TBC가 함께 한다. 특히 대구는 서울에 이어 제2의 공연도시로 통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4년 발표한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대구지역 인구 1000명당 객석 수는 17.5석이다. 7대 특별·광역시 중 서울(18석)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계명아트센터(1954석), 오페라하우스(1508석), 수성아트피아(1159석) 등 1000석 이상의 대공연장도 10곳이 넘는다. 지난 2월에는 대구 태생의 대형 창작뮤지컬 '투란도트'가 서울에 입성,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라이선스 재공연은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처음 선보인 뒤 서울로 올라왔고 뮤지컬 '위키드' 라이선스 두 번째 시즌 역시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포문을 열었다. 대구에서 검증을 거친 이 작품들은 서울에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계명아트센터는 이번 '지킬앤하이드' 공연으로 서울 지역 공연장 못지않은 명징한 음향 등을 뽐내며 이 작품의 프로덕션을 다지는데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킬앤하이드'는 25일까지 공연한 이후 내년 3월10일~5월21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을 거쳐 월드 투어에 돌입하게 된다. 일단 중국 원어 공연 등이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