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지휘자의 고백 "난 좀 더 배워야… 초심 잃을까 두렵다"

입력 : 2016.12.07 01:11

[BRSO와 내한한 지휘자 얀손스]

세계 정상급 두 오케스트라 RCO·BRSO 이끄는 名匠
군악대 퍼포먼스 등 기발한 연출… 알프스 오르는 듯 실감나는 연주

'We ♥ KOREA.'

큰북에 새겨진 이 귀여운 문구로 2000여 객석에 미소가 번졌다.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하이든 교향곡 100번 '군대'를 들려주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은 4악장에 이르자 뜻밖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오케스트라가 상쾌한 선율을 연주하는 가운데, 타악기 주자 네 명이 무대가 아닌 객석 1층 출입문으로 들어와 무대 위 동료들과 박자를 맞추며 군악대 같은 타악을 들려준 것이다.

2부는 꽉 찬 무대였다. 단원 102명이 총출동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연주하는데, 물결 치는 현(絃)의 트레몰로와 쭉 뻗는 오보에, 폭포처럼 내뿜는 금관이 눈 감고 들어도 알프스를 오르는 듯 사실감을 줬다. 전날인 4일 들려준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3번까지 올 한 해 국내 실연(實演) 중 최고라 할 만했다.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오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빈체로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오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빈체로

BRSO 상임지휘자인 마리스 얀손스(73)는 왼손으론 사운드를 매만지고 오른손으론 지시를 내리며 다채로운 소리의 향연을 보여줬다. 2003년부터 BRSO의 상임지휘자, 2004~2015년엔 로열 콘서트헤보(RCO)의 상임지휘자까지 맡아 베토벤, 브람스, 하이든 등에서 일가를 이뤘다. 오스트리아 빈 신년 음악회 지휘를 세 번 맡았을 만큼 인기도 최고. 2008년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세계 20위 오케스트라에 RCO와 BRSO를 둘 다 넣었는데 그 목록에 두 번 이름 올린 지휘자는 얀손스가 유일했다.

단점은 단원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독한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라는 것. 53세이던 199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푸치니의 '라 보엠'을 지휘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후 몸 안에 제세동기를 달고 사는데도 밤늦은 시각까지 리허설을 체크하고 녹음한 것을 들어본다. 그러다 문제를 발견하면 스스로를 탓한다. 공연 다음 날인 6일 얀손스는 "언제나 최고 수준에서 일해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나한테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기교와 소리, 악구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뤄서 언제 들어도 황홀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가끔 단조롭다는 평도 들어요. 하지만 디테일을 무시하면서까지 감흥에 치중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그래서 깊이 공부해야 한다. 악보는 그냥 표시일 뿐, 그 너머로 파고들어가서 작곡가가 암호화해 놓은 고백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악보를 볼 때마다 20층짜리 건물의 맨 밑바닥에 내가 있다고 가정하곤 끝까지 밀고 올라가요. 그 위에 뭐가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나마 노력이라도 해야 꿈꾸는 걸 시도해볼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예요."

RCO와 BRSO를 동시에 지휘했는데 그럼 소리도 같을까. "아뇨, 달라요. BRSO는 소리가 크고 폭발할 것처럼 흥분을 일으켜요. RCO는 투명하고 섬세하고 우아하지요." 지금도 하이팅크 등 동료 지휘자들의 리허설을 참관하는 그는 "지휘는 완성이 없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까 볼수록 새롭고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좀 더 배워야 해요. 초심을 잃을까봐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얀손스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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