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지독한 삶 이야기하는 것이 연극

입력 : 2016.11.24 00:25

[제10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장막 희곡 - 김은성 '썬샤인의 전사들'

어린 시절부터 역사 마니아
'목란언니' '뺑뺑뺑' 등 현대사 문제 냉철하게 짚어
"환경·철학 주제로 쓰고 싶은데 세상이 도와주질 않네요"

"아…." 제10회 차범석희곡상 장막 희곡 부문에 '썬샤인의 전사들'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은 극작가 김은성(39)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제가 받아도 되나요?" 1977년생인 그는 지금까지 차범석희곡상 장막 희곡 부문에 당선된 작가 중 최연소다. 고(故) 차범석 선생과 맺은 인연을 회상하던 이전 당선자와는 달리 그는 "차 선생님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위인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은성의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극적 상상력'이라는 평을 듣는다.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역사, 특히 비사(秘史)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친구들이 로봇 장난감이나 연예인 사진에 빠져 지낼 때, 초등학생 김은성은 아버지 서재에서 '정인숙 사건'이나 '남산의 부장들' 같은 책을 몰래 빼 읽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국어 교사를 남몰래 사모하게 된 소년은 칭찬받고자 글쓰기에 매달렸다. 동국대 북한학과에 진학해 학교 방송국에서 사극을 쓰다가 아예 진로를 바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

희곡 ‘썬샤인의 전사들’로 제10회 차범석희곡상을 받게 된 극작가 김은성은 “역사의 반복되는 비극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완결된 것처럼 여겨졌던 과거사의 기억을 무대로 다시 불러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희곡 ‘썬샤인의 전사들’로 제10회 차범석희곡상을 받게 된 극작가 김은성은 “역사의 반복되는 비극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완결된 것처럼 여겨졌던 과거사의 기억을 무대로 다시 불러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2006년 '시동라사'로 시작된 그의 희곡들은 현대사의 단면을 보는 듯, 현실의 삶과 그 이면의 아픔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불편하고 지독한 곳까지 이야기하는 데에 연극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 양복점을 무대로 한 '시동라사'는 소외된 사람들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담았고, '연변엄마'(2011)와 '목란언니'(2012)는 중국 동포와 분단 문제의 프리즘으로 현재의 우리 모습을 냉정하게 짚었다. 2014년 '뺑뺑뺑'과 '로풍찬 유랑극장'에서는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산아트센터 기획으로 올해 공연한 '썬샤인의 전사들'은 3년 반 동안 쓴 원고가 A4용지 150장, 20%를 덜어내 공연했는데도 3시간을 넘겼다. 애초 구상은 6·25 때 임진강에서 영국군과 중공군이 만나는 세계사적 이야기였는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내용을 바꿨다. "감정이입이 안 되더라고요. 지금 우리 문제도 이렇게 심각한데…."

다시 쓴 작품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K타워 참사'로 가족을 잃은 작가가 소년병의 수첩 한 권을 매개로 소설을 쓰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 중일전쟁, 4·3과 6·25를 거치며 현대사의 사건 속에서 희생되는 아이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것이 1980년대 공안 사건에 연루된 작가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그 비극은 현재진행형이 된다.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이제는 멈추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썬샤인의 전사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울을 보며 증오에 빠진 자신 역시 괴물처럼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찰을 통해 비극의 반복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을 통해 '과거사 정리'라는 메시지를 제시한 그도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 앞에서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이젠 정치나 역사 문제에서 벗어나 철학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희곡을 쓰고 싶은데,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일이 제 극작에 어떻게든 반영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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