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55년만에 '샤콘느'…숨죽인 객석 기립박수 절로 터져

입력 : 2016.11.22 09:43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하루에 들려주는 연주자는 고독한 마라토너에 비유된다. 반주 없이 6곡을 홀로 연주하는 일은 고난도 테크닉에 따른 집중력과 체력이 상당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마치 '에베레스트산'과 같이 평생 한번은 등정해야 할 일생일대의 작품이다.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68)가 19일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등정에 참여했다. 바이올린 활을 든 지 63년, 13세가 되던 1961년 유학을 떠난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만나 처음 바흐를 접한 뒤 55년 만이다.

이날 정경화는 마라토너보다 작가(作家)로 부를 만했다. 약 세 시간 동안(인터미션 20분씩 2번 포함) 체력적인 부담 탓에 몇번 미스터치가 들렸지만, 악보를 다 외운 그녀는 원전을 존중하면서도 본인 만의 해석을 가했다.

전성기 때 예리한 칼을 지닌 검객처럼 연주했던 그녀다. 이날도 거룩한 바흐의 심정으로 뭉클해진 청중의 심장을 할퀴었다.

1부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파르티타 1번이 특히 그랬다. 천하의 그녀도 긴장한 듯, 음색이 날카로웠다.

바이올린 소나타 2번과 파르티타 2번을 들려준 2부에 앞서 활짝 미소를 지은 정경화는 점차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테크닉보다 작가적인 기질을 발휘, 음에 문맥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화룡점정은 파르티타 2번 마지막 악장인 5악장 '샤콘느(Chaconne)'. 높고 험한 산들로 둘러쌓인 첩천산중 중 가장 경사가 높은 이 곡에서 그녀의 진가가 드러났다. 비장하지만 처절하지는 않고, 엄중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노련한 절제미로 바흐의 경건한 얼굴을 드러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2500명의 기립박수는 마땅했다.

바흐의 곡들에 담긴 인문학적 맥락, 활을 켤 때 생기는 마찰에 대한 물리학, 음색과 공연장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발휘되는 연주의 미학 등 기술적인 것을 뛰어넘으며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마지막 3부 바이올린 소나타 3번과 파르티타 3번에서는 정경화의 인생이 보였다. 2005년 현을 짚는 왼손 집게손가락을 다친 뒤 5년간 악기를 놓기도 했던 그녀는 바이올린과 물아일체가 됐다. 삶을 묵묵히 살아가듯, 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순리의 경지에 이르렀다. 중간중간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그녀는 파르티타 3번 6악장 '지그(gigue)'를 끝내고 활짝 웃었다 .

이날 거장의 특별한 무대였던 만큼 피아니스트 손열음·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등 후배 연주자들이 대거 객석에 앉았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도 객석에서 귀를 기울였다.

이날이 네 번째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였다. 앞서 지난 5월 중국 베이징, 이달 광저우와 상하이에서 여정에 올랐다. 향후에도 수차례 전곡 연주에 나선다. 내년 1월 일본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 무대에 오른다. 같은 해 5월에는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전곡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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