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가수' 역량 증명한 노래… 극 전개는 갸우뚱

입력 : 2016.11.21 00:35

[리뷰]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

사랑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며 이름을 알려달라 호소하는 소프라노 서선영(엘자)은 첫날밤 남편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해 흔들리는 여인의 불안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충분하지 않으냐'며 아내를 제지하는 테너 김석철(로엔그린)의 노래는 간절하고도 묵직했다.

지난 16~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세 차례 열린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 '로엔그린'은 두 주역 가수의 '바그너 가수' 자질을 증명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무대였다. 바그너(1813~1883)의 낭만 오페라 '로엔그린'은 남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엘자가 멀리서 나타난 기사의 도움을 받아 결백을 증명하고 그와 결혼한다는 이야기. 단, 기사의 이름과 신분을 물어선 안 된다. 신분이 드러나면 성스러운 힘을 유지하지 못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 덩어리. 비극은 금기에서 싹트고, 자신을 성배(聖杯)를 지키는 로엔그린이라고 밝힌 기사는 엘자의 곁을 영원히 떠나버린다.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 장면. 3막에서 정체를 밝힌 테너 김석철(왼쪽)이 상심에 잠겨 있다.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 장면. 3막에서 정체를 밝힌 테너 김석철(왼쪽)이 상심에 잠겨 있다. /국립오페라단
바그너 오페라에선 오케스트라 선율에 밀리지 않을 만큼 특별한 힘을 가진 바그너 가수가 중요한데, 스위스 바젤극장에서 엘자 역을 맡아 호평받은 서선영은 풍부한 성량과 살아 있는 연기로 감동을 안겼다. 독일 도르트문트극장에서 로엔그린 역을 소화한 적 있는 김석철은 특유의 미성으로 성배의 기사를 맑게 그려냈다. 특히 3막에서 신분을 밝히며 부른 노래는 현에 손가락을 대고 가벼운 진동만 줘서 울림을 얻어내는 하모닉스 주법처럼 깨끗했다.

다만 연출은 의문을 낳았다. 베네수엘라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는 본래 구원자로 그려지는 로엔그린을 '허무맹랑한 사기꾼'으로 뒤집어 절망을 안기는 인물로 묘사했지만 로엔그린을 숭배하는 노랫말과 극 전개가 어긋나면서 몰입을 방해했다. 지휘자 필립 오갱은 바그너 오페라를 이끌 좋은 지휘자가 있으면 국내 교향악단도 상당한 수준의 바그너 음악을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