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영화배우…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하죠"

입력 : 2016.11.16 00:28

파리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하딩, 오늘 예술의전당서 공연
"13년간 수석객원지휘자 맡아온 런던심포니는 강인한 어머니, 파리는 자상한 아빠 같아요"

트럼펫을 불던 열세 살 소년은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때마다 지휘자가 부러웠다. "트럼펫 주자는 자기 차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지휘자는 연주 내내 바쁘잖아요. 트럼펫을 안 불 땐 지휘자를 보면서 손짓과 눈빛을 머리에 담았죠. 나도 지휘를 해야지 다짐하면서요." 14일 서울 삼성동 호텔에서 만난 대니얼 하딩(41)이 파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딩은 '클래식 강국' 영국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거장'으로 일찌감치 손꼽혔다. 미국 작곡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를 녹음해 명(名)지휘자 사이먼 래틀에게 보낸 게 열일곱 때였다. 3년 뒤엔 음악을 공부하러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하자마자 베를린필 음악감독이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수로 베를린필에 데뷔했다. 하딩을 '나의 작은 천재(my little genius)'라고 불렀던 아바도는 자신이 창단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물려줬다. 놀라운 것은 그가 학교에서 지휘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대니얼 하딩. 그는“지휘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했다. /파리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대니얼 하딩. 그는“지휘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했다. /파리 오케스트라
지난 9월 하딩은 영국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았다. 카라얀과 솔티, 바렌보임, 에셴바흐, 파보 예르비 등 거장들이 거쳐간 곳이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새 음악감독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악단을 지휘해보고 할 수 있는 말이 '잘했어요'밖에 없다면 음악감독을 하면 안 돼요. 저는 오케스트라의 아픈 곳부터 쿡 찔러요. 거기서부터 다듬어 나가죠."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거절했다. 세 번을 찾아오자 선언했다. "'사흘째까진 좋겠지만 석 달 뒤엔 날 죽이고 싶을 거다. 내가 당신들을 돌아버리게 할지도 모르니까'라고. 그래도 와달래요. 제가 일을 열심히 해서 좋다면서요."

13년째 수석객원지휘자를 맡고 있는 런던 심포니와 파리 오케스트라를 비교해달라 했더니 "이건 비밀인데, 런던 심포니는 내 어머니 같다. 모든 것을 팍팍 해치우고 강인하고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파리는 젠틀해요. 온화하고 자상한 아빠처럼. 성향은 정반대인데 단원들 목소리가 크고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건 닮았어요." 그러면서 "오케스트라는 영화배우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를 보세요. 작품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헷갈리게 천의 얼굴이에요. 악단도 배우처럼 자신을 죽이고 음악을 한껏 드러내야죠."

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는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조슈아 벨),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을 들려준다. 하딩은 "10대 때부터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좋았다. 곡을 끌고 가는 방식이 파격적이다"며 웃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듣고선 '음?' 해요. 하지만 선율과 리듬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뼛속까지 프랑스 정취가 감도는 음악을 들려드릴게요."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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