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린스키·빈필...극사실화같은 섬세함과 호방함의 찰떡 궁합

입력 : 2016.11.03 10:41
찰떡 궁합을 과시하는 거장 지휘자와 걸출한 오케스트라의 두 조합은 역시 예상대로 귀를 호강케 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그가 총 감독을 맡고 있는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조합은 러시아 음악의 풍경화를 거침없이 펼쳐보였다. 정명훈 도쿄필 명예 음악감독(서울시향 전 예술감독)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현의 결의 느껴질 정도로 세밀화를 그려갔다.

◇풍경화 속 섬세함

31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의 연주는, '러시안 매드니스'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광란의 핼러윈 밤에 적절한 수식이었다.

절정은 2부에서 들려준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제1&2 모음곡 중 발췌한 것들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몬태규가와 캐퓰릿가'로 시작했는데, 음악만으로 양 가문의 대립으로 인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심장을 조여왔다.

감싸주는 '수도사 로렌스'로 한 숨 돌리더니 경쾌한 '마스크'로 치고 나가고 '줄리엣 무덤 앞의 로미오'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들려준 엄중한 '티볼트의 죽음'은 처절하지 못해 아름다웠다.

1부를 시작한, 재기발랄한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1번 클래시컬은 게르기예프가 무게 중심을 잡아 근사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울부짖는 악단의 강렬함 속을 매끈하게 빠져나가는 피아노의 유연함이 돋보였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끝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있었다. 호방하게 해석한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과 화려함을 거침 없이 빨아들인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었다.

'차르'(황제)라는 별칭답게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게르기예프는 손열음의 연주에 싱긋 웃기도 했다. 서울의 중심이 아닌 수도권에서 이런 공연을 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호사였다.

◇정교함 속 호방함

혹한이 찾아온 11월1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정 감독 지휘의 빈필의 비단결처럼 고운 현이 귀를 포근하게 감쌌다.

맨손으로 지휘한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가 격정적인 뜨거움이 흘러넘쳤다면, 정 감독의 절제되면서 박력 있는 지휘봉을 따라간 빈필은 기품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특히 상임지휘자 없이 공연마다 지휘자를 초빙하는 빈필에서 지휘자와 악단의 끈끈함은 어떤 화음보다 안정적이었다. 정 감독과 빈필은 1995년부터 해외에서 호흡을 맞춰왔지만 국내에서 함께 연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1부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말 그대로 모범적인 연주였다. 편안하면서도, 단원들의 차진 호흡과 디테일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2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 화룡점정이었다. 특히 1악장과 4악장은 귀가 호사스러울 정도였다. 변주곡의 여운을 한껏 머금은 1악장의 마지막과 묵직하고 비장한 샤콘느 주제 선율을 반복하다 장엄하게 마무리를 짓는 4악장은 명연이었다.

앙코르는 단정했던 본 공연과 달리 호방함이 돋보였다. 슬프면서 감미로운 선율로 대중에게 익숙한 브람스 3번 3악장은 단단했고, 정 감독이 서울시향 예술감독 재직 시절 국내외에서 자주 선보인 헝가리 무곡 1번은 역시 박진감이 넘쳤다.

김나희 클래식 음악칼럼니스트는 "어제 몇몇 순간들은 카를로스 클라이버 혹은 줄리니(브람스 3번 연주로 유명했는데 앙코르가 특히)를 떠올리게 할만큼 깊이있는 해석과 서정적인 프레이징들이 돋보였다"며 "롯데콘서트홀의 섬세한 음향 덕분에 베토벤과 브람스의 이 유명한 교향곡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과 빈필은 2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번 더 조합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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