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조재현 vs 옥자연

입력 : 2016.11.01 11:02
연극 '블랙버드' 인기… 일주일 연장
옥자연 "'밀정' 송강호 부인역 이후 첫 주역"
조재현 "신인들에 밝은 손전등 선물하고파"

“자연이의 연기 구질은 때가 묻지 않았어요. 직구인데 나름 스피드와 파워가 있는 신종 직구죠. 당황스러워요. 허허.”(조재현)

“상상 이상으로 마음대로 연기를 하라고 하시고, 그걸 다 받아주세요. 초반에는 정말 괜찮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어떤 연기도 다 받아주시니 배려가 느껴지니 저도 자신감이 생기죠.”(옥자연)

8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연극 ‘블랙버드’에서 ‘레이’ 역의 조재현은 포수를 자처했다. 극 구조상 돋보일 수밖에 없는 ‘우나’ 역의 옥자연은 투수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등 수시로 직구를 뿌려대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궁지에 몰린 뒤 겨우 삶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레이는 방어적으로 그녀의 공을 어떻게든 받아내야 한다.

에딘버러 출신 작가 데이비드 헤로우어가 신문 기사를 발전시킨 작품이다. ‘열두 살 소녀와 중년 남자의 금지된 섹스, 그리고 15 년 만의 만남’이라는 파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이름을 바꾼 뒤 새 삶을 살고 있는 레이는 미성년자 우나를 성적학대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 생활을 마쳤다. 15년 만에 만난 레이와 우나는 갈등과 사실, 그리고 진실한 마음 등의 주변을 둘러싸고 계속 부딪힌다. 결국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인간 대 인간의 부딪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90분의 러닝타임이 끝난 뒤에도 진실은 흐릿하다. 열린 결말이다. 몽타주처럼 얽힌 두 사람의 대화는 무엇이 진실인지, 레이의 진심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확실한 기승전결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낯설다. 배우, 연출과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인기와 관심에 힘 입어 1주일 연장 공연을 결정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대학로 공연 브랜드 ‘연극열전2’의 네 번째 작품으로 국내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당시 프로그래머로서 이 작품을 접했던 조재현은 이번에 수현재컴퍼니의 대표로서 제작에 나섰다. “제작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작품이에요. 조금씩 다른 연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요.”

수현재컴퍼니는 지난 2014년 3월 수현재씨어터 개관 이후 ‘그와 그녀의 목요일’, ‘미스 프랑스’, ‘민들레 바람되어’의 흥행 연극과 ‘엘리펀트송’, ‘얼음’ 등 작품성에 비중을 둔 연극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조재현이 작품에 반해 2007년 출연과 공동 제작까지 맡아 화제가 됐던 극단 골목길의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다시 올려, 대학로 민간 극단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블랙 버드’는 실험성에 무게 중심을 뒀다. 코미디 연극 또는 진지한 연극, 즉 극과 극으로 나눠진 대학로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연극 제작사로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본 임무죠. 관객들이 새롭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블랙버드’ 역시 초반에 혼란스럽게 받아들이시다가, 이제 점점 흥미로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 이런 연극이 많아지면 대학로에 더 다른 유형의 작품들도 나올 거라 믿어요.”

TV스타인 채수빈뿐 아니라 우나 역에 옥자연 같은 신인을 캐스팅한 것 역시 제작사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옥자연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는데, 주역은 ‘블랙버드’가 처음이다. 최근 흥행 영화 ‘밀정’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의 부인 역으로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노래고 만들어 부르기도 하는 옥자연은 가련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옹골찬 배우다. 우나 역을 신비스런 분위기도 만든다.

옥자연은 오디션을 통해 우나 역에 발탁됐다고 했을 때 중압감이 너무 컸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공연이든 초반에 소화 불량을 겪어요. 출연하다 보면 나아지는데 이번에는 잘 낫지 않더라고요. 저와의 싸움을 잘 끝내야죠. 매일 매일 성장해나가는 느낌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연극반을 하는 등 연기를 좋아했지만 “배우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연극과 진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아 이렇게 결국 무대에 서게 됐네요”라고 웃었다.

조재현은 배우는 “아마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이 안 보이는데 남들은 길은 있다고 하고. 막막하죠. 어떤 사람은 그 안갯속을 계속 헤매는 사람이 있고, 안개를 걷고 나오는 사람도 있죠. 다른 지점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는 조재현은 “저는 단지 신인 배우들에게 그 안갯속을 헤맬 때 좀 더 빛이 밝은 손전등을 선물하고 싶어요. 한 발자국 씩 천천히 나아갈 수 있게요”라고 말했다. “자연이처럼 열심히 하면 주역으로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죠. 물론 자연이가 ‘블랙버드’로 떵떵거리며 사는 배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갔으면 하죠.”

수현재컴퍼니는 최근 옥상공연, 로비 공연 등 관객과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만들어 호응을 얻었다. “저희는 돈을 벌고자 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저와 직원, 배우들 모두 연극 제작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죠. ‘블랙버드’ 역시 두 달 이상을 공연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40일 밖에 하지 않아요.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관객들이 흥미로워 하면 제작사로서 의미를 찾는 거죠.” 20일까지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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