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연극 '코뿔소'

입력 : 2016.10.31 10:13

김나희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 = 28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달오름 극장에서 외젠 이오네스코의 연극 ‘코뿔소’가 에마뉘엘 드마르시-모타의 연출로 국내의 관객들과 만났다.

파리시립극장(떼아트르 드 라 빌) 극단을 이끌고 2004년 이오네스코의 1957년작 코뿔소를 다시 무대에 올린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연출가 중 한 명인 드마르시-모타는, 세련되고 정제된 연출로 이미 르몽드와 뉴욕타임즈의 극찬을 받았다.

파리에서는 4번의 재공연을 통해 5만명의 관객을 만났고 유럽은 물론 북미와 남미, 러시아와 일본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려 전 세계에 걸쳐 약 20만 명의 관객과 조우했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 갑자기 코뿔소가 나타나고, 사람들의 몸이 코뿔소로 변해간다. 변화의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이유는 마치 외로움이라는 듯, 코뿔소라는 난폭하고도 파괴적인 동물의 등장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적 상황과, 인간과 인간 사이 소통이 되지 않는 현실, 단절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주요 연극 중 한 편이다.

이오네스코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 자전적으로 쓰여졌던 단편소설에서 시작해 희곡으로 개작되었던 배경을 살리겠다는 듯, 드마르시-모타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텍스트를 현대에 걸맞는 것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이오네스코의 유일한 소설인 ‘외로운 남자’(Le Solitaire)의 문장들을 따와 주인공 베랑제의 독백으로 연극의 문을 여는 선택을 했다.

이오네스코의 희곡 원작에서는 카페에서의 장면으로 바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게, 주역 베랑제를 맡은 세르주 마기아니는 “손을 내밀어 자신이 관객들을 이끌고 극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1막과 2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제각각 다르게 움직이며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무대구성과 마치 피나바우쉬의 탄츠 테아터 부퍼탈의 군무를 떠올리게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텍스트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는 배우들의 몸동작이었다. 드마르시-모타는 공연 이후에 열린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본인이 안무가 출신이 아니고 배우들 역시 전문 댄서가 아니었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남성과 여성사이의 힘의 논리를 나타내기 위해 과감한 동작들을 취한 것은 사실이라며 떼아트르 드 라 빌이 유럽에서 유일하게 피나 바우쉬가 이끌던 탄츠 테아터 부퍼탈이 30년 넘게 매년 공연을 선보인 극장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매년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접하며 ‘제스처와 드라마를 결합해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 그녀의 스타일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어떤 순간에는 대사보다도 더 강렬한 감정들을 전달했는데, 베랑제의 친구 장이 코뿔소로 변해가는 순간을 아무런 특수 효과도 의상의 도움도 없이 그저 연기만으로 소화한 장면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상이나 의상, 특수분장 등의 도움 없이도 그저 정통 연기 방식만으로도 인간이 한 마리의 코뿔소가 되어가는 과정을 열연하면서 단 한 순간도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았다는 점은 다분히 경이로웠다. ‘장’역할을 맡아 열연한 ‘위그 케스테’는 선명한 발성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목소리와 몸짓의 변화만으로도 인간에서 자연스럽게 코뿔소로 화하며 대배우다운 면모를 증명했다.

코뿔소가 나타나기 직전까지 배경이 되는 작은 마을의 카페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논리학자와, 식료품 가게 주인,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이다. 그 와중에 코뿔소가 나타나 순식간에 작은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마을 사람들 역시 하나 씩 코뿔소로 변해간다.

이 혼란의 와중에 코뿔소가 과연 어디 출신인지 혹은 뿔의 개수가 몇 개 인지만을 따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동시에 현대의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사태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피상적인 화두에만 집중하며 무게 중심없이 부유하듯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루마니아 출생의 이오네스코는 프랑스로 건너와 학업을 하던 중 작가가 된 케이스로, 전후 문학의 사조 인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작가로 분류되지만 스스로는 “부조리극”이라는 꼬리표를 사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포르투갈 출신의 어머니를 둔 연출가가 두 언어와 두 나라 사이에 놓여있는 상태로 성장한 만큼, 루마니아와 프랑스 사이에서 성장한 이오네스코와 어떤 개인적 동질감을 느꼈을까. 두 언어로 이루어진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지점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혼자됨을 견디지 못하고 집단에 속해야만 안심하는 인간의 심리는 물론,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기제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집단을 나누고, 다수의 집단의 속해서야만 안심하며 소수에게는 가혹하게 구는 등 차별은 이미 20세기의 유럽에도 만연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자아의 불안, 특히 유년기에 겪은 두려움, 나치에 협력했던 아버지와의 불화, 그로 인한 죄책감 등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이 담겨 있었으며, 인간의 삶은 이미 부조리 하지만 연극은, 연극 속에 존재하는 현실은 부조리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매개체가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실 너머, 현실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분량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성 캐릭터인 데이지를 맡은 발레리 대시우드는 미모로 인해 극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자들의 호감과 대시를 받지만, 베랑제가 지닌 불완전한 휴머니즘의 가치를 알아보고 세속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베랑제를 선택한다.

결국 그녀 역시 베랑제의 곁을 떠나가지만 연극이 끝나기 전 그녀와 베랑제가 인류의 마지막 남자와 여자로 존재하는 순간은 특별하다. 그녀가 여성이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탓에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것이 아닐까. 순수하면서도 현명하기 때문에, 베랑제와 함께라면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데 가치를 두는 것이다. 특히 사무실 장면에서 그녀가 압박해오는 남성들의 권력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 그 압력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말하려고 하는 장면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장 평범하면서 영웅과는 거리가 멀고, 권력을 그녀에게 행사하지 않는 베랑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그녀가 결국에는 코뿔소를 따라 떠났고, 결국 영웅적인 면은 조금도 없는 베랑제의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영웅주의 없는 주인공의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연극을 막을 내린다. 음향 디자이너 제퍼슨 럼베예의 음악은 불안감을 전달하기에 제격이었으나 드럼과 저음소리가 뭉개져 전달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고, 공들인 자막과 세련된 무대 장치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전체주의의 망령과 유년시절의 어두운 기억에 사로잡혀 있던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졌다. 배우들의 열연과, 드마르시-모타의 영리한 연출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다가온 ‘코뿔소’를 통해 낯설게만 느껴지던 부조리극의 작가 이오네스코의 진면목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수작’이었다.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이자 M&A 컨설턴트다. 프랑스 파리에서 피아노·하프시코드·음악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중앙SUNDAY’, 격월간 ‘Axt’ 등에 글을 썼다.

【서울=뉴시스】 nahui.adelaide.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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