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연희단거리패, 새집 찾은 이유…30스튜디오

입력 : 2016.10.28 09:51
"(창경궁과 성균관대 사이) 이 곳을 샀다니까 모두 놀라요. 흉가,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거죠. 중국인 유학생이 숨졌고, 건물은 불타서 다 으스러졌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연극을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어요."(이윤택 예술감독)

27일 저녁 종로구 명륜 3가에 마련된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삼공(30) 스튜디오'에서 앞길의 행복을 비는 '비나리'가 울려퍼졌다. 연희단거리패가 혜화로터리 인근에 위치한 80석 규모의 소극장 게릴라극장을 매물로 내놓은 대신, 새로 마련한 연극 공간이다.

70석 가량의 객석과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본거지인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오가며 머무를 수 있는 숙소 등을 갖췄다. '30'은 올해 연희단거리패가 맞은 30주년을 뜻한다. 28일 정식 개관한다.

김미숙 연희단거리패 배우장이 앞장서 죽은 이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어 극락으로 보내는 씻김굿을 진행했고, 망자의 저승길을 닦은 굿거리를 끝으로 새 집에 들어설 채비를 마쳤다. 이날 연희단거리패의 새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100여명은 떡을 함께 나눠 먹었다.

이 예술감독은 "우리는 남도의 유명한 씻김굿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에요. 올해 말 이 극장에서 국극 '씻금'(표준어 '씻김'의 진동 사투리)이라는 연극을 합니다"라며 "이곳에서 상생의 굿판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앞서 세월호 참사 현장인 팽목항 앞바다에서 씻김굿을 올렸다는 이 예술감독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걸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걸 연말에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상징적으로 연극의 가는 길을 보여주겠는 것"이다. 매달 이자만 500만원이 나간다는 게릴라극장을 선뜻 인수하겠다는 이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 예술감독은 이곳에서 소모전을 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30스튜디오로 옮기는 건 이곳에서 전열을 정비하자는 뜻이에요. 콘셉트가 있는 공연을 선보일 겁니다. 이유가 없는 공연은 하지 않을 거예요. 공연은 금토일만 해도 됩니다. 월화수목은 쉬는 거죠. 워크숍을 하든지, 세미나를 하든지, 리딩을 하든지요. 공연 횟수를 줄일 거예요."

30스튜디오를 대화의 장이 넘치는 공간으로도 꾸려나갈 생각이다. 공연장 밑에 카페를 차린 이유다. "연극의 힘이라는 것이 대화입니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계자들과 더 많이 대화를 하자, 연극이 가지는 소극장 운동의 힘을 되살리고 싶어요. 소극장의 힘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힘이죠. 조직력을 회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 보셨다시피 연극이 잃어버리고 있는 집단성, 역사성 그리고 제의성을 살리고 싶어요."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마지막까지 생존하겠다는 의지의 공간"이라며 "객석이 적어 상업적인 공연은 할 수 없지만 사람 향기가 나고 예술 향기가 느껴지는 힘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바랐다.

개관작으로 28일부터 31일까지 일본청년단의 '서울시민'과 '서울시민 1919'를 올린다. 소극장 작품인데도 배우 21명이 출연한다. 연극 '과학하는 마음' 등으로 국내에도 마니아를 보유한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 고마바 아고라 극장 예술총감독의 작품들이다.

꾸준히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히라타 오리자는 90년 일본 연극계에 '조용한 연극' 붐을 일으키며 극리얼리즘의 새 바람을 몰고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시민'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직전의 서울에 사는 일본인 일가 생활을 그렸다. '서울시민 1919'는 1919년 3월1일 한나절의 일본인 일가의 모습을 살핀다.

이 예술감독은 이후 11월 1~4일, 11~13일, 18~20일 자신이 재해석한 '서울시민 1919'를 선보인다. 그는 "양심의 문제, 민족성, 조선인의 정체성을 예민하게 다룬 작품"이라며 "대본은 그대로 뒀지만, 일본인 일가가 사실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선인이 세상과 만나러 가는 것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파리의 가을축제 내 '페스티벌 도쿄'에 초청받아 프랑스 가기 직전 한국에 들른 히라타 오리자는 "유럽 연출가들이 연출한 작품인데 아무래도 지배자의 시선이 배어 있다"며 "이윤택 예술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봤다.

"지금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끔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이 중요해요. 식민지 지배, 피지배 등을 다룬 일본인이 쓴 이 작품이 프랑스에 초청받은 이유죠. 바로 유럽의 공공극장이 가지고 있는 역할입니다. 일본도 한국도 정부가 극장의 예술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저의 예술가들은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재료를 주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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