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안무가 하이데 "단원들 동작 빨리 터득 놀라워"

입력 : 2016.10.26 11:36
■국립발레단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첫 작업

“존 크랑코 감독님은 제게 ‘너는 굉장한 예술감독이 될 거야’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감독하기 싫어요, 계속 춤을 출 거예요’라고 했죠. 근데 강수진 단장도 제게 ‘저는 예술감독을 하기 싫어요. 계속 춤을 추고 싶어요’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수진 씨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국립발레단과 작업을 하게 됐네요.”

세계적인 안무가 마르시아 하이데(79)가 내한했다. 칠레 산티아고발레단의 단장인 하이데는 자신이 안무한 버전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국립발레단과 처음으로 작업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안무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한국 공연을 위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25일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만난 하이데거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낭창낭창한 목소리와 에너지를 뿜어냈다.

하이데는 국립발레단과 단원들에 대해 거듭 놀라움을 표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카라보스 역의 수석무용수 이재우가 196㎝의 장신에도 빨리 춤추는 것에 놀랐고, 오로라 역의 김지영, 박슬기, 김리회에는 투명한 매력이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멋진 발레단이에요. 단원들이 굉장히 빨리 배웁니다. 여러 발레단과 일했는데, 가끔 반복해서 가르쳐줄 때가 많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두뇌가 굉장히 발달했어요. 도대체 이렇게 빨리 배울 수 있는지 놀랄 정도입니다.”

강수진 단장이 잘 이끌고 있다는 평도 내놓았다. “강수진 단장과 단원들의 관계가 좋아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모든 안무가들이 강 단장과 함께 일하기를 원했는데 단원들을 잘 관리하는 위대한 단장이 됐죠. 그녀는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 단원들이 잘 따를 겁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1980)는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중 다른 작품들인 ‘호두까기인형’(1892), ‘백조의 호수’(1895)에 앞서 가장 처음 만들어졌다.

과거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할 당시 20세기 드라마 발레의 완성자이자 이 발레단의 상징인 존 크랑코(1927~1973)에게 많은 영감을 준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1961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프로 무용수 생활을 시작한 하이데는 크랑코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이던 시절 수석 무용수로 발탁,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 ‘카르멘’ ‘백조의 호수’ 등 그의 드라마틱 발레를 섭렵했다.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발레단 수석 발레리나를 지낸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각별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수진 단장이 어릴 적 모나코 왕립발레 학교 재학 중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 선생님과 함께 있는 걸 보자마자 ‘저 소녀는 모든 것을 갖췄다’고 생각했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왔을 때 집중력이 정말 대단했어요. 꾸준히 계속 성장했고요.”

하이데는 크랑코 안무가에 의해 초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상과 반지까지 강 단장에게 대물림했다. “강 단장은 제게 딸과 같은 존재에요. 제가 읽은 것, 들은 것 모두를 수진씨에게서 보죠. 드라마 발레에서 가장 위대한 무용수입니다. 무대와 관객을 장악하는 능력이 대단한 엄청난 스타죠.”

강 단장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무용수임에도 감독이던 자신을 돌봐줬다며 “홍삼도 가져다주고, 고추도 가져다주고 했어요. 아침에 매운 것을 먹어야 한다고 지금도 제가 그렇게 하고 있죠. 호호.”

약 20년 넘게 슈투트가르트발레단 감독을 지냈고 2004년부터 산티아고발레단에 몸담고 있는 하이데는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레단을 만들려면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산티아고 발레단도 이제서 제가 원하는 발레단이 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발레단의 변화는 빨리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차근차근 천천히 만들어가야죠”라고 조언했다.

하이데는 무용수로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3세 때 브라질에서 엄마를 따라 이 작품을 본 뒤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버전은 동화책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드는 무대세트와 발레의 우아함이 배가된 의상이 돋보인다. ‘선과 악의 대결’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특히 오로라 공주에 초대받지 못한 뒤 분노하는 마녀 카라보스를 남자 무용수가 연기해 더 강렬하다.

“요정을 믿으세요? 저는 믿어요. 중요한 건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동화라고 하더라도 진실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삶과 떨어지지 않죠. 제 버전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캐릭터는 카라보스입니다. 그는 마지막에 ‘다시 돌어온다’고 해요. 악과 대면할 수 있지만 죽일 수는 없어요. 그게 삶의 진실이에요.”

"우리 모두는 선하거나 악할 수 있죠. 제가 만약에 잠을 못 잤다면 카라보스처럼 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팔순을 앞둔 하이데가 안무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는 오는 11월 3~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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